체 게바라와 함께 혁명전선에 뛰어든 전설의 킬러 길복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인증된 계정 · 다른 시각을 권하는 불편한 매거진
2023/04/28

영화 <길복순>은 청부살인업계의 전설적인 킬러이자 싱글맘인 길복순이, 죽이거나 죽어야 하는 숙명적 대결에 휘말린 상황을 그린 액션물. 2023년 3월 31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로 “사람 죽이는 건 심플해. 애 키우는 거에 비하면” 같은 엣지있는 대사 또한 유명하다.

지연된 클리셰


변성현 감독의 <길복순>은 흥미로운 작품이다. 곳곳에 재기발랄이 넘쳐난다. 길복순(전도연)은 MK ENT라는 이벤트 회사의 직원이다. 이 회사는 음지의 (이렇게 부르는 게 가능한지 모르겠으나) 산업인 청부살인업계의 삼성 같은 존재이다. 극중에서 이 업계 사람들은 살인을 작품이라고 부른다.

아마 신선하고 감각적이라는 우호적인 평과 함께 그저 그런 이야기를 포장만 휘황하고 번듯하게 바꾼 키치 풍이라고 하대하는 평이 병존하였으리라. 평만 그런 게 아니라 영화 자체가 그렇다. 관객을 웃게 할 여러 대목 중 하나가, 길복순과 같은 업계에 종사하는 한희성(구교환)이 길복순에 대거리하는 영화 초반부의 식당 장면에서 나온다. 한희성이 입은 티에 체 게바라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극중 길복순과 한희성처럼 여리여리하고 평범해 보이는 사람을 청부살인업자로 캐스팅한 것에서 체 게바라는 필연적 수순이었을까. 어느 정치인이 안중근을 테러리스트라고 말한다면 곤경에 처하겠지만, 장소가 달라져 예컨대 한국이 아니라 일본이라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영화에서 제법 멋진 대사를 더러 날린 한희성이지만, “체 게바라가 킬러였지” 같은 발언은 없었다. 당연히 체 게바라가 사람을 죽였겠지만 그 사실 하나만으로 그를 킬러라고 부를 수는 없다. 이때 킬러를 한국어로 정확히 정의하면 청부살인업자이다.

길복순과 한희성 등 영화 속 거의 모든 인물이 사람을 죽여서 생계를 유지한다. 체 게바라는 대의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사람을 죽였다. 큰 차이지만, 결과로서 사람을 죽였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길복순과 한희성 또한 안중근이나 체 게바라와 마찬가지로 살인을 좋아해서 살인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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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르몽드의 대표적인 자매지로 약칭은 "르 디플로"입니다. 국제뉴스를 다루는 월간지로 30개 언어로 51개 국제판이 발행되고 있다. 조르조 아감벤, 아니 에르노, 알랭 바디우, 슬라보예 지젝, 피에르 부르디외 등 세계적 석학들이 즐겨 기고했으며, 국내에서는 한국어판이 2008년10월부터 발행되어 우리 사회에 비판적인 지적 담론의 장으로서 각광받고 있습니다. 노엄 촘스키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를 일컬어 "세계를 보는 창"이라고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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