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스필버그의 불온한 꿈에 대하여
2023/06/23
“영화는 꿈이야, 절대로 잊혀지지 않는 꿈.”
생애 처음으로 극장에 온 어린 새미(가브리엘 라벨 분)가 영화라는 미지의 대상에 대한 불안을 호소하자, 그의 엄마인 미치(미셸 윌리엄스 분)는 최면을 걸듯 부드럽게 말한다. 불안에 떠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 한 말 치곤 매우 의미심장한 이 대사는 마치 관객들에게 조심히 건네는 밀어 같이 들린다. 앞으로 펼쳐질 <파벨만스>(2022)가 스티븐 스필버그라는 한 개인의 내밀한 사적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영화감독으로서 매체에 대해 말하는 자기반영적(self-reflexivity)인 영화가 될 거라는 속삭임 말이다.
영화를 끝까지 본 관객이라면 극장을 나와 미치의 속삭임을 떠올리며 이렇게 질문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란 정말 꿈인가? 만약 ‘영화’가 꿈이라면 스필버그의 자전적 이야기로 알려진 <파벨만스>는 어떤 종류의 꿈인가? 어린 새미가 <지상 최대의 쇼>(1952)의 기차 전복 장면을 보고 충격을 받았던 것을, 장난감으로 재현한 영화를 만들어 극복한 것처럼 <파벨만스>를 통해 스필버그가 성장기에 겪었던 상처의 기억을 치유하기 위한 꿈일까?
자전적이라는 사실은 어디까지나 영화 외적인 정보다. 감독 개인이 어떤 의도로 영화를 만들고, 그것을 만드는 과정에서 어떤 경험을 했을지는 관객이 확인할 수 없는 문제이기에 정확히 답할 수는 없다. 대신 영화라는 꿈을 활용해 기차 전복 장면을 더 이상 무섭지 않을 때까지 볼 수 있다고 말하는 주체가 어린 새미가 아니라 미치라는 사실에 따라, 질문에 대해 다른 접근을 해볼 수 있다.
‘영화’를 바라보는 시선
<파벨만스> 안에서 ‘영화’가 무엇이라 정의하는 인물은 항상 주인공인 새미가 아닌 미치다. 그녀에게 ‘영화’는 꿈이며, 그 꿈을 통해 현실의 충격을 통제 가능한 방식으로 완화할 수 있다고 정의한다. 그러나 그런 정의가 영화를 직접 만드는 새미에게도 적용되는 것인지 정말 맞는 것인지는 생각...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르몽드의 대표적인 자매지로 약칭은 "르 디플로"입니다. 국제뉴스를 다루는 월간지로 30개 언어로 51개 국제판이 발행되고 있다. 조르조 아감벤, 아니 에르노, 알랭 바디우, 슬라보예 지젝, 피에르 부르디외 등 세계적 석학들이 즐겨 기고했으며, 국내에서는 한국어판이 2008년10월부터 발행되어 우리 사회에 비판적인 지적 담론의 장으로서 각광받고 있습니다. 노엄 촘스키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를 일컬어 "세계를 보는 창"이라고 불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