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속 정치학] ‘신들의 법’과 ‘인간의 법’의 충돌

아홉시
아홉시 · 일상에 영감을 더하는 지식 채널
2022/08/10

[문학 속 한 장면] 소포클레스 作, <안티고네>


나와 같은 피를 나눈 사랑스런 동생 이스메네야,
알고 있니? 제우스 신이 오이디푸스에게서 비롯된 불행들 중…
아아, 어떤 불행을 우리 사는 동안 이루려 하지 않으실까?
[…]
이제는 그게 뭐야? 방금 전 크레온 장군이 무슨 포고령을
전 도시에 내렸다고 하잖니? 넌 뭔가 알고 있니, 뭘 좀 들었니?
아니면 적들이 낳은 재앙이 위협하며
친구들에게 다가오는 것을 알아보지 못했니?


소포클레스, <안티고네>, 《오이디푸스 왕 外》, 을유문화사, 1-10행

고대 그리스 서사시와 비극은 첫 행이 중요하다. 첫 행에서 작품의 주제가 제시되기 때문이다. <안티고네>의 첫 행은 “나와 같은 피를 나눈 사랑스런 동생 이스메네야”이다.(1)

이처럼 <안티고네>는 동생을 부르는 언니의 말로 시작된다. “나와 같은 피를 나눈 사랑스런 동생”은 다소 과장된 수식어구라 눈길을 끈다. 눈여겨 볼 표현은 “같은 피를 나눈”이란 표현이다. 판본마다 번역은 조금씩 다르지만,(2) 어쨌든 이 첫 행은 ‘자매는 혈육’이란 당연한 사실을 강조한다. 이런 표현들을 가만히 음미해보는 게 고전 감상의 한 방법일 텐데, 이를 통해 작가는 이 비극의 주제가 ‘혈연’임을 드러낸다. 안티고네에게는 혈연관계가 가장 중요한 가치다.

그리스 비극은 대조와 대립의 원리에 따라 진행되기에 곧 안티고네와 대적하는 인물 및 가치가 등장한다. ‘혈연’과 반대되는 가치는 ‘국가’이며, 이를 대변하는 인물은 크레온 왕이다. “자신의 조국보다 친구[혈연]를 더 소중하게 여기는 자는 이 땅에 설 자리가 없소”(183-184행)라는 대사는 크레온의 입장을 보여준다.


(1) 다른 예로, 호메로스 서사시 <일리아스> 첫 행은 “분노를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분노를”이다. 이 서사시의 주제가 ‘분노’라는 것을 알 수 있다.
2. 다른 번역에서는 “같은 어머니에게서 난”(민음사) 또는 “내 친아우인”(도서출판 숲)이라고 되어 있다. 참고로 <안티고네>의 번역은 주로 을유문화사 판을 따랐는데, 경우에 따라 민음사 판과 도서출판 숲 판을 따랐고 인용 말미에 판본을 표기해두었다.
얼룩패스
지금 가입하고
얼룩소의 모든 글을 만나보세요.
이미 회원이신가요? 로그인
교수, 평론가, 시인, 라디오 DJ, 작가, 전문 연구원, 기자, 에세이스트…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전하는 깊이 있는 지식과 통찰을 아홉시에서 만나보세요.
28
팔로워 124
팔로잉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