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 인문학-안치용의 Numbers (2) - 체위보다 중요한 기적의 인칭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인증된 계정 · 다른 시각을 권하는 불편한 매거진
2023/03/19
[숫자로 읽는 인문학]
2는 원래 불청객이었다

하나만 알고 둘을 몰랐다면 세계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태양이 자신만 만들고 행성을 만들지 않았다면 우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태양 플레어를 견디는 아폴론 같은 신들의 세계가 펼쳐졌을 뿐 허약한 인간에게 생존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을 텐데, 그랬다면 신들도 재미가 없지 않았을까.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그 전에 하나의 점이 하나의 점으로만 머물렀으면 빅뱅 또한 없었다. 하나는 절대고독을 넘어서며 얼마나 무서웠을까. 한 개 점의 무한한 전율과 제 무게 속으로 지옥의 깊이로 붕괴하기. 빅뱅과 개화 사이에는 규모 차이가 있을 뿐 본질이 같다. 둘 다 자신이 넘어선 것이 절대고독인 줄을 넘어서기 전에는 몰랐을 것이다. 1은 다른 1을 호명한다. 다른 1을 만나면 그 1과 함께 2로 불리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1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2는 원래 불청객이었다.
<어부와 사이렌>, 1830~1896 - 프레데릭 라이튼
‘나-너(Ich-Du)’

세계는 사람이 취하는 이중적인 태도에 따라서 사람에게 이중적이다. 사람의 태도는 그가 말할 수 있는 근원어[Grundworte]의 이중성에 따라서 이중적이다. 근원어는 낱개의 말이 아니라 짝말[Wortpaare]이다. 근원어의 하나는 ‘나-너(Ich-Du)’라는 짝말이다. 또 하나의 근원어는 ‘나-그것(Ich-Es)’이라는 짝말이다. ‘그것’이라는 말을 ‘그(Er)’ 또는 ‘그녀(Sie)’라는 근원어로 바꿔 놓더라도 근원어에는 아무 변화가 없다. 따라서 사람의 ‘나’도 이중적이다. 왜냐하면 ‘나-너’의 ‘나’는 근원어 ‘나-그것’의 ‘나’와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나와 너』 중에서, 마르틴 부버 지음, 표재명 옮김, 문예출판사

혹시 부버가 나의 그림자에 집중하느라 나와 나의 그림자를 덮어버린 메트로폴리탄의 더 큰 그림자를 놓친 것은 아닐까. 만일 그렇다면 나는 ‘너-나(Du-Ich)’/‘그것-나(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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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르몽드의 대표적인 자매지로 약칭은 "르 디플로"입니다. 국제뉴스를 다루는 월간지로 30개 언어로 51개 국제판이 발행되고 있다. 조르조 아감벤, 아니 에르노, 알랭 바디우, 슬라보예 지젝, 피에르 부르디외 등 세계적 석학들이 즐겨 기고했으며, 국내에서는 한국어판이 2008년10월부터 발행되어 우리 사회에 비판적인 지적 담론의 장으로서 각광받고 있습니다. 노엄 촘스키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를 일컬어 "세계를 보는 창"이라고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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