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근한 집요함과 해방된 몸짓 <다음 소희>(2022)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인증된 계정 · 다른 시각을 권하는 불편한 매거진
2023/04/06
제75회 칸 국제 영화제 비평가주간 폐막작으로 선정되어 이미 관객들을 만난 적이 있던 <다음 소희>(2023)는 2017년 전주 현장실습생 여고생 자살 사건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쉽게 놓칠 수 있는, 작은 목소리를 담은 영화를 지지”한다는 배두나 배우의 뭉근한 집요함은 정주리 감독의 전작인 <도희야>(2014)에 이은 만남으로 그 힘이 증폭되었다. 더욱이 정주리 감독의 8년 만의 신작이라는 사실과 신예 배우인 김시은의 활약도 기대되는 지점이다. 영화의 시간 구성은 1부와 2부로 나누어져 있다. 특성화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소희(김시은)는 휴먼  엠넷이라는 콜센터로 현장실습을 가게 되고, 그곳에서 고객들의 인터넷 해지를 방어하는 ‘해지 방어팀’에 배치된다. 소희의 발랄함은 고발장을 작성하고 자살한 이준호 팀장(심희섭)의 죽음을 목격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주저앉는다. 해지 방어율 인센티브를 주지 않는 팀장에게 폭력을 가해 징계를 받던 소희는 석양이 지는 강물에 몸을 던져 자살한다. 이후 2부에서 소희의 죽음을 수사하던 형사 유진(배두나)은 은빛 물결이 마구 흔들리는 그녀가 서 있던 바로 그 자리에서 같은 풍경을 바라본다. 
 

비틀거리는 시스템과 웅덩이에 고인 감정 


어른들의 말에도 소신을 굽히지 않고, 똑바로 두 눈을 응시한 채 자기주장을 피력하던 소희는 한마디로 당돌한 소녀다. 아니, 그런 소녀였다. 소희는 출근한 첫날에 마주한 집단 안에서 개인의 정체성을 지우고 숨죽이고 일하는 방법을 배운다. 파티션 칸막이 너머로 울리는 전화와 기계처럼 대응하는 동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소희의 단독 샷은 이제 그룹 샷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소희 역을 맡은 김시은 배우는 몸의 움직임을 최소화하면서 지정된 자리에 몸을 고정하는 담담한 변화를 성실하게 수행해낸다. “최대한 지연시키면서 고객들의 마음을 익히는 컨트롤”을 하라는 이준호 팀장의 말은 소희의 사적인 감정도 뒤로 밀어두라는 학습으로 바뀐다. 고객들의 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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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르몽드의 대표적인 자매지로 약칭은 "르 디플로"입니다. 국제뉴스를 다루는 월간지로 30개 언어로 51개 국제판이 발행되고 있다. 조르조 아감벤, 아니 에르노, 알랭 바디우, 슬라보예 지젝, 피에르 부르디외 등 세계적 석학들이 즐겨 기고했으며, 국내에서는 한국어판이 2008년10월부터 발행되어 우리 사회에 비판적인 지적 담론의 장으로서 각광받고 있습니다. 노엄 촘스키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를 일컬어 "세계를 보는 창"이라고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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