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 중간정산] 직장 상사들이 DJ 배철수만 같았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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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mpman84 · 방송사에서 일하는 직장인
2024/05/10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듣던 중이었는데 사연 하나가 소개됐다.

 "철수 형님, '비틀스'와 '마이클 잭슨' 중 누가 더 위대한가요? 친구하고 논쟁이 붙었는데 대답 좀 해 주십시오."

 두 아티스트들의 대단함과, 동시에 서로 비교 불가함에 대해서 한참을 설명하던 DJ 배철수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맺었다. 우문에 현답이었다.

 "둘 다 위대한데요, 그렇지만 저는 '데이빗 보위'를 제일 좋아합니다."

 현명한 DJ께서 30년째 진행하고 있는 이 라디오 프로그램을 참 오랫동안 들어왔다. 누구나 다 힘들었다고 얘기하지만 개중에서도 특히 내가 제일 힘들었다고 기억하게 되는 고3 시절, 쉴 틈 없이 빽빽하게 채워져 있던 하루 일과 중 유일하게 한숨 돌릴 수 있는 시간이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듣던 때였다.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서 저녁을 먹고, 다시 차를 타고 야자를 하기 위해 학교로 돌아오던 오후 6시 반 즈음에는 늘 '철수는 오늘...' 이라는 코너를 들었다. Acoustic Alchemy의 'Ballad for kay'라는 차분한 기타 연주곡이 흘러나오고 배철수 아저씨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짧은 에세이를 전달하는데 그걸 듣고 있으면 왠지 마음이 따뜻해졌다. 지금도 그 코너는 현재 진행형으로 계속 중인데, 어쿠스틱 기타 첫 소절만 들어도 그때 그 시간으로 되돌아간 듯 아련한 기분이 든다.

 외로운 고시생이었을 때도 내 곁엔 역시나 <배철수의 음악캠프>가 있었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엔 신림동 고시촌 비좁은 하숙방에 처박혀서 매일같이 블러나 스웨이드 같은 브릿팝을 들었다. 6월에 있었던 2차 시험이 끝났으니 하고 싶은 것도 해야 할 일도 없고, 그렇다고 어디 나가 놀고 싶어도 지갑엔 땡전 한 푼 없는 데다, 남들 다 하는 연애도 안 하던 때였으니 방구석에 틀어박혀 하루 종일 홀로 음악만 들었었다. 낮에는 이런저런 팝 블로그들을 돌아다니면서 분명 어디서 들어보긴 했는데 제목이나 가수를 몰랐던 음악들에 대해서 알아가고, 저녁 무렵에는 방바닥에 널브러져서 장판이 난지 내가 장판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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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해야 좀 더 즐거울 수 있을까 고민하는, 열정 따위 없는 룸펜이고 싶습니다. 먹고 살아야 해서 어느 지상파 방송사에서 10여년째 일하고 있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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