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교사 에세이] 그만둬도 살아집니다

가넷
가넷 인증된 계정 · 전 고등학교 교사, 현 프리랜서✒️
2024/04/15
교원평가 성희롱 피해를 공론화하고
가해자에게 온정주의적인 사회와
전방위에서 가해진 다양한 2차 가해와
사법시스템과 상부기관과의
지난한 싸움을 거치고
소속 교육청 감사실로부터의
2차 가해까지 당하고 나서
내가 마침내 교직과 헤어질 결심
단단히 마치고
사직원을 낸다/냈다고 주변에 선포했을 때

가족들, 친구들, 지인들, 그 누구든
걱정어린 목소리로 가장 많이 했던 말이
"그만두고 뭐하게?" 였다.

(그들 모두가 진심으로
내가 '그만두고 뭐 하는지'에 대해
걱정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진심으로 나의 생계나 미래를 걱정하거나
궁금해 한 이들도 있고,
그저 '대책없이 직장을 그만둬서 어쩔 거냐'고
묻고 싶은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주변에 사직을 하고 싶어하는 동료 교사들도
"샘은 이제 그만두면 어떻게 할 거예요?
(앞으로 뭐해먹고 살아요?)"

라고 절박하게 묻곤 했다.
제발 뭔가 확고한 답변을 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눈빛으로.

나의 경우 생존을 위해,
말 그대로 살아있기 위해
그만두는 선택을 했기 때문에
딱히 거창하거나 확실하고 구체적인 계획이 있는 게 아니었다.
살아있으려면 교직을 떠나야 했다.

나는 석사학위나 박사학위가 있는 것도 아니고
결혼을 해서 당분간 배우자에게 기댈 수 있는 상황도 아닌 미혼의 1인가구이며
흔히 말하는 '금수저' 집안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당장 사업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그저 어린 나이에 임용고시에 통과하고 교직에 입성해
'이럴 줄 알았으면 교사 안 했을 텐데'라고 후회하고, 나의 노동환경에 대해
장점을 착즙하고 오직 아이들만 보고 버티듯 일하며
하루하루 어떻게든 소소한 기쁨을 찾으며
버티듯 살아온 평범한 20대였을 뿐이다.

사람들은 자꾸 두려워하거나 궁금해했다.
어렵게 들어간 교직을 그만두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이냐고.

그런데 나에겐 계획보다도 
어떤 명확한 확신이 있었다.
이건 개인적인 확신이라기보단 팩트에 가깝다.

내가 편의점에서 풀타임 아르바이트를 뛰더라도
어디서 최저시급만 받고 일하더라도
교사로 일하며 벌던 돈에 근접하게
벌 수 있을 거라는 것.
(정말 슬픈 사실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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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고등학교 교사(~2023. 8.) 교원평가 성희롱 사건을 공론화(2022.12.) 했습니다. 악성민원을 빌미로 한 교육청 감사실의 2차 가해(2023.4.)로 인해 사직원을 제출했습니다.(2023.9.1.~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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