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우리가 사랑했던 디지털 기기

이요훈
이요훈 인증된 계정 · IT 칼럼니스트
2023/06/16
이제는 잊혀진 풍경이 하나 있습니다. 첫 눈 오는 날, 누군가에게 전화하기 위해 학교 도서관 공중전화 앞에 줄이 길게 늘어서던 풍경. ‘지금 눈 온다, 어디 있니, 만나자, 보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메세지를 전하고 싶어, 전화카드를 든 채 자판기 커피 한 잔을 뽑아 들고 기다리던 시절.

1990년대 중반 풍경입니다. 1997년 말 PCS 서비스가 시작되기 이전에는 휴대폰은 돈 많은 사람이나 가지고 있는 물건이었기에, 멀리 떨어져 있는 우리는 무선 호출기(삐삐)로, 쪽지로, PC통신 채팅창으로 서로를 만날 수 밖에 없었거든요.

지금은 생각만 해도 살풋 웃음이 나는 시절의 이야기. 팬심만이 가득했던 1997년은 아니었답니다. 그때 우리가 함께했던 디지털 기기들의 이야기를, 지금, 들려 드릴께요.

1. 무선 호출기 삐삐

2011년과 2012년에 많은 화제를 몰고 왔던 드라마 tvN ‘응답하라 1994/ 응답하라 1997’에서는 유독 유선 전화기를 들고 있는 주인공들이 많이 나옵니다. 때론 수줍게(?) 자신의 삐삐 번호가 적힌 쪽지를 건네는 모습도 보이죠. 당연한 것이 이때는 삐삐의 시절. 휴대폰을 가지고 있는 것은 잘 사는 몇몇 어른들 뿐이었거든요.

당시 삐삐는 지금 휴대폰 정도의 위상을 가지고 있었다고 보셔도 됩니다. 종류도 다양해서, 처음에는 숫자만 찍히던 것이 나중엔 음성 사서함을 기본으로 탑재하기 시작하더니, 나중엔 말로 이야기하면 글자로 찍어주는 삐삐까지 등장했습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97
드라마 응답하라 1997


덕분에 전국적으로 히트했던 것이 바로 ‘공중전화’입니다. 삐삐는 기본적으로 ‘이 번호로 전화해!’라는 느낌으로 번호를 찍는 물건이라, 바깥에서도 삐삐에 들어온 음성 메세지를 확인하거나 전화를 하기 위해선 공중 전화가 꼭 필요했거든요. 게다가 대부분 숫자만 찍히는 삐삐의 특징상, 숫자로 메세지를 전달하는 약어들이 엄청나게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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