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은 산재 인정, 공단은 불복 항소… “죽어야 끝날 일인가” [그녀의 우산 5화]
2023/10/19
“엄마, 나 거기 그만둘까봐.”
하루는 여름 휴가라고 고향집에 내려온 아들이 이런 말을 꺼냈다. 취업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을 때였다. 직장 생활을 더는 못 견디겠다고, 차라리 회사를 나와 택배를 나르고, 택시를 몰겠다고 말이다. 김정혜(가명, 71) 씨는 타향살이에 지친 아들의 응석이라고 생각했다. 워낙 참을성이 강한 녀석이니까 이번에도 잘해낼 거라고 믿었다.
‘개천에서 난 용’. 정혜 씨에게 아들 신호영(가명, 47) 씨는 그런 존재였다. 충남 보령에서 자란 아들은 서울로 올라가 취업까지 거뜬히 해냈다. 그런 아들을 보면, 정혜 씨가 공장에서 악착같이 버틴 20년 세월이 뿌듯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들 호영 씨는 2002년 3월부터 2년간 LED 제품 생산 라인에서 엔지니어로 일했다. 그는 100~150℃의 고온에서 하루 11시간씩 제품 열 테스트를 수행하거나, 화학물질이 가득한 용액에 웨이퍼를 넣었다 빼는 작업 등을 했다. 하루 11시간에서 13시간을 일하며, 주말도 없이 주로 야간조로 투입됐다.
작업장에선 업무 효율을 높이기 위해 열을 식히는 장치나 국소배기장치를 가동할 여유가 없었다. 호영 씨에게 주어진 건 오직 방진복과 얇은 마스크 한 장뿐이었다.
“그때 내가 회사 못 나오게 했어. 끝내 다니다가 이 병을 얻은 거잖아. 그게 참…… 너무 후회가 되더라고.”
정혜 씨는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날을 떠올리며 눈물을 삼켰다.
“사람의 운명이라는 건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것 같아요. 건강했던 사람이 갑자기 이렇게 될 거라고, 들어보지도 못했던 병 때문에 내 새끼가 장애인으로 살 거라고 누가 생각하겠어.”
김정혜 씨는 습관처럼 고개를 돌렸다. 그 시선 끝에는 늘 아들 신호영 씨가 있었다. 마스크를 쓴 채 짙은 남색 소파에 몸을 기댄 남자. 인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