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책과 전자책 사이의 낙원을 찾아서

이건해
이건해 · 작가, 일본어번역가. 돈과 일을 구함
2023/07/07


책을 열심히 사모으는 사람은 집부터 장만해야 한다는 농담이 있다. 가혹하지만 사실이다. 항상 책장의 상황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살아야 하는 처지인지라 나는 이것이 별 과장 없는 진실임을 잘 알고 있다. 책은 항상 눈처럼 쌓이고, 제때 치워주지 않으면 생활의 영역을 잡아먹기 시작한다. 책이란 읽고 있는 순간이 아니면 그야말로 애물단지에 불과한 것이다. 

그럼에도 종이책에 포기하기 힘들 정도로 빼어난 장점들은 있다. 나는 그중에서 가장 멋진 게 ‘빌려줄 수 있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재미있는 책을 읽고 남에게 빌려주는 행위에는 같은 내용을 파일로 주거나 다른 사물을 빌려줄 때 느낄 수 없는 매력이 있다. 그것은 아마도 책이 오랜 시간 손으로 들고 바라본 사물인 동시에 타인의 기억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특히 문자로만 이루어진 책은 시각화도 음성화도 거치지 않은 기억의 원형에 가깝기에 더욱 특별하다. 기억을 손에 들어오는 형태로 공유할 수 있다는 건 문자를 개발한 인류에게 주어진 축복이리라.   

학교에 다닐 때는 공간도 취향도 공유하는 ‘동지’들이 많았던지라 종이책을 사서 읽고 빌려주거나 빌리는 일이 잦았다. 그렇게 같은 책을 읽고 잡담하는 게 학교 생활의 소박한 낙 중에 하나였다. 그러나 너도나도 졸업하면서 공유할 장소는 물론이고 비슷한 취향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마음을 놓고 대할 수 있는 동지들도 대부분 잃게 되었다. 만나기 힘들어진 것만 문제가 아니라, 생활 환경이 달라지면서 서로 다른 문화권에 편입된 것이 더 큰 문제였다. 결과적으로 굳이 종이책을 살 이유의 상당 부분도 상실되었으므로, 그즈음부터 가능하면 책은 전자책으로 사게 되었다. 좋든 싫든 그게 합리적인 결정이 된 것이다. 

전자책을 주로 사기 시작하면서 독서 생활은 약간 간편해졌다. 전자책은 계정을 아예 열어주는 방식이 아닌 이상 빌려줄 수 없으나(예외적으로 아마존은 빌려주기가 제한적으로 가능하다고 한다), 혼자 읽기에는 썩 편리하다. 주문하면 당장 받아서 읽을 수 있고, 레이아웃도 원하는 모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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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미스터리를 주로 쓰고 IT기기와 취미에 대한 수필을 정기적으로 올립니다. 하드보일드 미스터리 소설 “심야마장-레드 다이아몬드 살인사건”으로 데뷔. SF호러 단편소설 ‘자애의 빛’으로 제2회 신체강탈자문학 공모전 우수상. 제10회 브런치북 출판공모전 특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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