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로 살았던 시간의 기억 3

박순우(박현안)
박순우(박현안) · 쓰는 사람
2022/12/11
"박기자 어디야? 사무실로 들어와. 이렇게 그냥 나가면 어떡해. 대체 무슨 일이야. 그 놈의 자식, 입이 방정이더니 내 한번 일 낼 줄 알았지. 들어와서 얼굴 보고 얘기 합시다."
전화가 빗발쳤고, 말을 이어가는 건 내게 크나 큰 고통이었다. 사무실에서는 도망 나왔지만, 그 사건으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었다. 이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처음에는 모두 내 편을 들어주었다. 진심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랬다. 아래 후배부터 동료 기자들, 부장님, 국장님, 이사님까지... 쌍욕을 해가며 H를 나무랐다. 실제 앞에서도 그랬는지는 알 수 없었다.

H는 아무 연락이 없었다. 들려오는 말로는 출입처와 사무실에서 망신을 당한 걸 억울해 한다고 했다. 평소 자신이 음담패설을 잘 하는 걸 자랑처럼 여겼으니, 무엇이 왜 잘못인지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회사를 옮기더라도 이 바닥에 있는 한, 업종의 특성상 계속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H선배나 나 둘 중 하나는 아예 이곳을 떠나야 했다. 내가 될 수는 없었다. 피해자인 내가 떠난다면 그건 싸움에서 지는 꼴이었다. 어떻게든 H를 내보내야 했다. 

회사를 믿어 보기로 했지만 하루 이틀이 지나도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아무런 징계도 없이 지나가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계속 얼굴을 맞대고 살란 말이었다. 사과할 생각도 없는 사람의 사과를 받고 이 상황을 끝내라고 나를 설득해왔다. 그럴 수는 없었다. 그렇게 끝낼 수는 없었다. 온 몸과 마음이 갈기갈기 찢긴 사람에게, 온 세상의 시선이 꽂혀있는 사람에게, 할 소리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모두가 너무나 가볍게 말하고 있었다.

꼭 이직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는데, 점점 면접을 본 곳에서 연락이 오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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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 씁니다. 『아직도 글쓰기를 망설이는 당신에게』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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