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 중간정산] 선생님께서 내 후배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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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mpman84 · 방송사에서 일하는 직장인
2024/05/08
 종종 덕수궁 대한문에서 수문장 교대식을 구경한다. 이제는 하도 자주 봐서 처음만큼의 감흥이 없다. 대신에 예전보다 조금 더 자세히 바라보게 된다. 교대식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면면을 유심히 살펴본다. 오늘의 수문장께서는 키가 크고 근엄하게 생겼구나, 저기 저 친구는 동작이 어설픈 걸 보니 일한 지 얼마 안 됐나 보다, 어라, 저 양반은 되게 예전부터 봤던 익숙한 얼굴인데 아직도 여기 있네, 등의 감상평이 떠오른다. 몇 번 마주하지 않았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이제는 보인다. 감상에서 더 나아간 생각에도 잠긴다. 수문군은 하루 일당이 얼마나 될까, 단기 알바가 아니라 정규직으로 일할 수도 있을까, 그렇다면 이게 평생직장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들. 제 코가 석 자면서 남이 먹고사는 일에 뭐가 이리도 관심이 가는지 원.
                                                                   
 '평생 동안 할 수 있는 일'에까지 생각이 다다르자 지난 가을에 사표를 던지고 나갔던 후배가 떠올랐다. 평생은커녕 정년까지 한참 남았음에도 일찌감치 퇴직해버린 그 후배. 실은 후배라고 부르기엔 퍽 어색하다. 그분은 내가 고등학생 때 생물 과목 선생님이셨다. 그러니까 고3 때의 생물쌤께서, 내가 입사한 지 3년째였던 이 회사에 경력직으로 입사하신 것. 은사님이 내 후배가 된다는 건 상상해본 적 없던 일이었다. 인사팀에서 내게 연락이 오기 전까지는. 지나가던 선배가 말했다. 이번에 경력직으로 뽑힌 사람들 중에 진주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교사였던 분이 있던데 혹시 네가 아는 분 아냐, 거기서 학교 나왔잖아, 라고. 에이 설마요, 진주가 무슨, 옆집 부엌 찬장에 수저가 몇 벌인지 꿰고 다닐 수 있는 그런 시골 마을이 아니라구요, 라고 대답했는데 정말 그런 일이 벌어졌다.

 "선생님, 한 잔 받으시죠. 여기서는 제가 선배가 됐으니 오늘 밥은 제가 사겠습니다, 후배님."

 신규 채용자 명단에서 성함을 확인하고 깜짝 놀라 곧바로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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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해야 좀 더 즐거울 수 있을까 고민하는, 열정 따위 없는 룸펜이고 싶습니다. 먹고 살아야 해서 어느 지상파 방송사에서 10여년째 일하고 있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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