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극적 우대 조치의 종말 ④
2022/12/01
같은 잡지에서 몇 주 전에 발행한 같은 주제의 기사 ('The Death of Affirmative Action' 적극적 우대 조치의 죽음)를 쓴 사람은 제이 캐스피언 강(Jay Caspian Kang)이다. 한국계인 강은 콜럼비아 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달 초 뉴욕타임즈 오피니언란(Op-ed)에 이 주제의 칼럼을 기고한 학자는 콜럼비아 대학교의 사회학과 교수 제니퍼 리(Jennifer Lee)로, 콜럼비아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이다.
뉴요커와 뉴욕타임즈라는 뉴욕을 대표하는 진보적인 두 매체가 이 문제를 다룰 때 아시아계의 글을 싣는 이유는 적극적 우대 조치에 관한 논의의 핵심이 '흑인 대 백인'의 문제에서 '아시아계 대 기타 소수 인종'의 문제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두 매체의 평소 성향을 생각하면 적극적 우대 조치를 옹호하는 입장일 가능성이 높은데, 현재의 논의 지형을 보면 적극적 우대 조치는 아시아계 학생들에게 불리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이들 매체에서는 아시아계의 목소리를 통해 이 문제를 논의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흑인 문제는 흑인 기자가 취재해야 혹시 모를 오해를 피할 수 있다'라는 식의 기계적인 방어장치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이 글의 주제는 아니지만, 백인들이 압도적으로 다수인 미국 미디어계에서 흑인 저널리스트들의 고민에 대해 재미있고 진지하게 들어보려면 이 영상을 추천한다.) 그보다는 취재 대상에 대한 접근이 훨씬 용이하다는 점이 중요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중국계 학생과 학부모의 집을 찾아가 인터뷰를 한 후아 슈의 기사가 그런 이점을 잘 보여준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위에 소개한 글을 쓴 세 명이 모두 아이비리그를 나온 동아시아계라는 사실이다. 동아시아 부모에게 태어나 미국에서 성장한 이들에게 좋은 대학, 특히 아이비리그가 가지는 의미는 다른 어떤 인종보다 특별하다. 학력 숭배, 대학교 브랜드에 대한 열망은 동아시아 문화와 분리하기 힘든 어떤 것이다. 게다가 부모가 미국으로 건너온 계기가 취업이 아니라 유학인 경우 자녀의 좋은 학교 진학은 단순한 문화적 바람을 넘어 당위의 영역이 된다.
(미약한 딴소리) 글을 읽다가 문득 영국 이야기 생각나네요. 작년에 영국의 어떤 명문학교 입시에서 중국과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계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손해를 본 일이 있었거든요. 케임브리지 지역의 명문학교였는데 시험 가중치를 높게 두고 학생을 선발하니 수과학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중국+한국 학생들이 많이 선발된 거예요. 그래서 아예 수과학 과목을 줄여버리는 일이 있었다고 해요. 그 학교는 덕분에(?) 다양성을 획득했다고 하더라고요.
시험 과목의 변화가 차별이 될 순 없지만 특정 그룹의 학생들이 유리한 과목을 삭제하거나 축소하는 식으로 조절을 하는 것은 차별이라고 할 수 있나요. 복잡해서 잘 모르겠지만 썩 좋은 방법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다른 인종이었다면 다른 방향으로 생각했을 수도 있고요. 다음 글도 기대할게요!
(미약한 딴소리) 글을 읽다가 문득 영국 이야기 생각나네요. 작년에 영국의 어떤 명문학교 입시에서 중국과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계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손해를 본 일이 있었거든요. 케임브리지 지역의 명문학교였는데 시험 가중치를 높게 두고 학생을 선발하니 수과학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중국+한국 학생들이 많이 선발된 거예요. 그래서 아예 수과학 과목을 줄여버리는 일이 있었다고 해요. 그 학교는 덕분에(?) 다양성을 획득했다고 하더라고요.
시험 과목의 변화가 차별이 될 순 없지만 특정 그룹의 학생들이 유리한 과목을 삭제하거나 축소하는 식으로 조절을 하는 것은 차별이라고 할 수 있나요. 복잡해서 잘 모르겠지만 썩 좋은 방법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다른 인종이었다면 다른 방향으로 생각했을 수도 있고요. 다음 글도 기대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