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로 살았던 시간의 기억 1

박순우(박현안)
박순우(박현안) · 쓰는 사람
2022/12/10
나는 감정 표현이 서툰 사람이었다. 기쁨이나 환희를 온 몸으로 표현해본 적이 없다. 분노나 슬픔도 마찬가지다. 화가 나도 겉으로 표현하기보다는 안으로 삼켰고, 슬픔도 꺼이꺼이 목 놓아 울기보다는 조용히 눈물을 흘리는 편에 가까웠다. 어릴 땐 눈물도 흘리면 안 되는 줄 알고 참은 적이 많았다. 감정은 드러내기보다 감추는 게 미덕이라고 배우며 자랐다. 나보다 힘든 삶을 사는 엄마를 앞에 두고, 내가 더 힘들다고 징징댈 수는 없었다. 내 감정은 그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축적되어 갔다. 

일찍이 감정 감추는 법을 터득하다 보니 타인은 내 안에 어떤 감정이 휘몰아치고 있는지 잘 몰랐다. 타인은 속일 수 있었지만, 내 자신에게까지 감정을 감출 수는 없었다. 내가 느끼는 나는 누구보다 감정기복이 극심한 사람이었다. 화가 났다가, 기분이 좋았다가, 슬프고 우울했다가, 다시 좀 견딜만 한 과정을 하루에도 여러 번 반복했다. 그런 나를 드러내지 않고 감추고 사는 건, 내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하는 일이었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그런 내가 타인에게 딱 한 번 격하게 분노한 적이 있다. 몸을 부르르 떨며, 손을 꼭 움켜쥐고, 파르르 떨리는 입술로 분노의 말들을 쏟아내며, 눈물을 쏟은 사건. 오래 함께 일해온 선배가 있었고, 그 선배는 성적 농담을 즐겨하는 사람이었다. 어제 누구와 잤다는 둥 몇 번을 했다는 둥, 그런 말들을 일상적으로 내게 쏟아내던 사람. 고된 업무였고 워낙 일로 얽혀있는 관계인데다, 성적 농담이 회사에서도 용인되던 시절이었다. 불과 십수 년 전의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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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 씁니다. 『아직도 글쓰기를 망설이는 당신에게』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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