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 중간정산] 서늘한 바람이 불 때면 생각나는 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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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mpman84 · 방송사에서 일하는 직장인
2024/04/29
 서늘한 바람이 부는 계절이면 떠오르는 한 시절이 있다.

 한창 구직활동에 매진이던 대학 마지막 학기. 짧았다면 짧고 길다면 길다 할 수 있는 2년 반 동안의 고시생 생활을 접고 취업준비생이 됐다. 앉아서 공부만 하는 것 말고도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서둘러 남들 못지않은 토익 점수를 만들고, 재수강을 하며 C와 D라는 땟국 같은 성적을 세탁하고, 타의 반 자의 반 인근 사회복지관에 봉사활동을 나가고, 한 편의 성장소설 같은 자기소개서를 썼다. 소설을 잘 쓴 덕일까 필기시험이라면 이골이 난 덕일까, 어렵지 않게 몇 차례의 면접까지 볼 수 있었다. 생각보다 일찍 취업에 성공한지라 그렇게 본 면접은 겨우 네댓 번. 몇 안 되는 면접은 대부분 가을이나 겨울 즈음이었다. 그래서 지금의 계절이 되면 왠지 마음이 뜬다. 어두운 색 정장을 차려입고 반짝이는 구두에 단색 넥타이를 한 채 면접장에 앉아있어야 할 것 같다. 차갑고 딱딱한 의자에 허리를 꼿꼿이 펴고 앉아 다리를 덜덜 떨며 곧이어 호명될 내 이름을 기다리면서.

 넥타이, 하니 생각난다. 나는 감히 취준생 주제에 넥타이 매는 법을 몰랐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포인핸드니 윈저노트니 하프윈저노트니 하면서 별의별 방법들이 있었다. 분명 그림과 똑같이 따라 했음에도, 분명 그림과는 전혀 다른 결과물이 나왔다. 맸다 풀었다를 몇 번이나 되풀이해도 마찬가지였다. 얼굴에 벌겋게 열이 오르고 등덜미에 땀이 나서 와이셔츠가 달라붙고 들숨날숨을 거칠게 씨근덕거리다가, 급기야는 넥타이를 풀어 벽에다 홱 던졌다. 누구에게 향한 것인지 모를 분노였다. 곧이어 자괴감도 밀려왔다. 나는 스물일곱 해를 살아오면서 왜 넥타이 하나 맬 줄 모르는가. 중학 3년 고교 3년, 도합 6년을 넥타이가 딸린 교복을 입었잖나. 하지만 그땐 고무줄 넥타이였다. 아직 결혼이나 장례식장에 자주 들를 나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종종 집안 어르신들의 상을 겪지 않았나. 물론 그때도 장례식장 매점에서 파는 검은색 고무줄 넥타이가 있었다. 그러니까, 넥타이 매는 법을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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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해야 좀 더 즐거울 수 있을까 고민하는, 열정 따위 없는 룸펜이고 싶습니다. 먹고 살아야 해서 어느 지상파 방송사에서 10여년째 일하고 있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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