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 중간정산] 얀센 백신 맞는 아저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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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mpman84 · 방송사에서 일하는 직장인
2024/05/28
 (코로나19 팬데믹 시절의 이야기다)


 까똑.
 까똑 까똑.
 까똑 까똑 까똑 까까까까까똑.

 이른 아침부터 카카오톡 알림이 정신없이 울렸다. 휴직하고나서부턴 벙어리 삼룡이라도 된 양 하루 종일 별 말 없던 휴대폰이 웬일이람. 간밤에 무슨 난리라도 났나 싶어 바삐 화면을 켜서 지난 알림들을 확인했다. 이곳저곳의 단체 톡방에서는 숫자들이 여러 개 떠 있었다. 내용인즉슨 6월 1일부터 30세 이상 예비군, 민방위, 군 종사자 등은 얀센 백신을 접종할 수 있단다. 해당 백신은 한미 정상회담의 후속조치로 미국으로부터 공여받은 100만 명 분의 코로나 19 백신이라고. 고향 친구, 대학 동기, 회사 동료들은 "예약을 했냐", "언제 할 거냐", "이거 맞아도 괜찮냐" 등의 문답으로 열띤 대화를 이어갔다. 그나저나 우린 아직까지 민방위가 끝나지 않은 30대 아저씨라서 이런 혜택도 받는다. 국가는 제 마음대로 젊은 남자들을 끌고 가더니, 역시나 제 마음대로 이런 뜻밖의 선물도 준다.

 육아휴직을 시작한 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뜻밖의 고립감에 몸서리치던 참이었다. 일터에서 매일같이 만나던 사람들을 더 이상 보지 못하고, 집에서는 말도 통하지 않는 아이와 하루 종일 함께 옹알거리며, 문화센터니 맘카페니 동네 모임이니 하는 곳들은 대다수가 아빠가 아니라 엄마가 참석하기 때문에 나 홀로 외딴섬에 갇힌 듯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삶을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사회적 상호작용이라고는 하나 없는 시간이었다. 이런 와중에 울리던 톡 소리는 단순한 알람 소리가 아니었다. 내가 예전에 속해있던 세계에 대한 연결고리가 아주 끊기지는 않았음을 증명하는 동아줄과도 같은 소리였다. 백신 접종 대상이라는 소식보다 더 반가웠던 건 내가 알던 사람들과의 연락이 다시금 이어졌다는 것이었다.

 잠시 동안 지인들과 신나게 '상호작용'을 즐기고 난 후 백신 접종 예약 사이트에 들어갔다. 설마 이 나라에 백만이나 되는 장병들이 있겠냐마는 서둘러 예약을 하지 않으면 내 차례가 오지 않을 수도 있다. 다행히 집 근처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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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해야 좀 더 즐거울 수 있을까 고민하는, 열정 따위 없는 룸펜이고 싶습니다. 먹고 살아야 해서 어느 지상파 방송사에서 10여년째 일하고 있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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