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자를 당황하게 한 2024 노벨 화학상
우리 사회의 과학 이슈에 대해 왕성한 사회적 발언을 이어 가고 있는 이덕환 전 서강대 교수가 최근 '인공지능(AI)이 집어삼킨 노벨상'이란 제목으로 칼럼을 기고했다. "올해 노벨 물리학상과 화학성을 AI가 삼켜버렸다"는 말로 이 칼럼은 시작한다. 특히나, 노벨 화학상이 더욱 파격적이라 한다. 때마침, 이 문제에 대해 필자의 의견을 묻는 사람도 있어, 이 기회를 통해 의견을 피력하고자 한다.
이론화학자인 필자가 이해하기로 자연과학이란, 공학과 달리 특정 과학적 주제가 인류 문명에 무슨 유용성이 있는가를 묻기 이전에, 왜 특정 자연 현상이 일어나는지를 묻는 학문이다. 예를 들어 특정 아미노산 서열이 어떤 단백질 접합을 초래하는지에 대한 답을 '효과적'으로 찾는 일보다, 왜 특정 서열이 실험적으로 관측되는 특정한 단백질 접합을 초래하는지에 대해, 다음 절에서 설명할 '일관된 과학적 방법론'을 이용해 해답을 찾는 일에 학문적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일면 이 교수의 지적에 공감한다. 왜냐하면, AI는 그런 과학적 질문에는 대답하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현대 화학이 이 문제를 푸는 방법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이 문제는 기본적으로 양자 다체 문제의 일종이며, 나아가 이 해를 이용해 깁스(Gibbs) 자유에너지를 계산하는 일관된 통계역학적 방법론이 정립돼 있다. 그러나, 이 다체 문제에 대해 매우 간단한 고전역학적 근사나 평균장 근사 등 아무리 간단한 근사를 부분적으로 도입해도, 현재 컴퓨터의 성능으로는 해당 계산을 수행해 답을 구하는 데 상상할 수 없이 많은 계산 시간이 필요하다. 지난 반세기 이상에 걸친 수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에 대해 의미 있는 진전이 없었다는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일이다. 화학뿐만 아니라, 현대 자연과학이 직면하고 있는 이 문제는 그만큼 지루하고 거대하다.
AI는 '일관된 과학적 방법론'을 통해 해답을 찾고 있나
자연 현상을 이해하는 방법을 제시하는 것만으로 과학이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런 면에서, 필자와 같은 이론화학자뿐만 아니라 모든 화학자들의 어깨에 감당하기 힘든 짐이 얹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짐을 덜어줄 수학 정리(theorem)와 같은 과학적 방법을 새로 제시한다면 의문의 여지없이 위대한 과학적 성취가 될 것이다.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양자컴퓨터의 실용화에 거는 기대가 큰데, 이는 이런 문제가 얼마나 지루한 일인지를 재확인시켜준다.
관점을 바꿔서, 현대 화학이 직면하고 있는 이 지루한 한계에 비춰 단백질의 구조와 기능을 매우 정확히 예측하고 새로운 단백질의 설계를 가능하게 할 방법이 있다고 해보자. 그것이 일관된 과학 방법론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의학이라는 또 다른 과학과 인류 복지의 미래에 가져다줄 혜택이 크다. 이 방법에 대해 화학자들이 어떤 평가를 해야 할지는 매우 당황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이번 노벨 화학상을 대하는 화학자들의 태도가 그렇지 않을까. 그리고 이런 당황스러움이 화학자에게만 국한된 것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런 태도가 인류를 단순히 AI 예찬으로 이끈다면, 인류 문명이 매우 위험한 미래를 맞게 될까 걱정하게 된다.
필자는 가끔 기계학습을 화학반응을 이해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다른 학자의 연구를 접한다. 이 방법의 유용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거기에 사용된 파라미터들의 적절성에 대해, 나아가 그런 연구가 과연 과학의 영역에 속하는가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품게 된다. 하지만 이런 연구가 근래 권위있는 잡지에서 출판되는 비율이 높아진 상황을 고려하면, AI는 과학의 영역에서 추방할 수 없는 도구가 돼 가고 있다.
필자의 관점에서, AI는 순수과학보다는 응용과학의 범주에 속한다. 만약 그렇다면, 다음 질문을 제기하는 것이 과학자의 책임일 것이다. AI가 과학적 방법론 사이를 연결하는 도구로 사용된다면, 그 연결의 과학적 근거가 명확하지 못할 경우 과학자들은 어디까지 용인할 수 있을까. 즉, 과학에서 AI가 오남용되지 않도록 반드시 엄격한 범위로 국한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관점에서, 과학이 AI를 자신의 틀 안으로 어떻게 끌어들일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할 때다.
강홍석 전주대 명예교수
강홍석 전주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