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아에오(17)] 아이들은 이미 어우러져있었다.

케이크여왕
케이크여왕 · 평범함을 꿈꾸는 엄마
2024/04/02
느린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다. 이젠 익숙해질 법도 한데 아침 등굣길은 언제나 괴롭다. 아이가 힘들게 하는 것은 아니고 내가 위축돼서 그렇다. 다른 아이의 엄마들은 모두 정문 앞에서 아이만 들여보낸 채 손을 흔드는데 나는 실내화를 갈아신는 곳까지 아이와 함께 들어가서 특수반 선생님 또는 지도사 선생님께 아이를 인계해야 하니 답답한 것이다. 물론 아이를 데려다주는 엄마들도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기가 진행될수록 줄어든다. 눈치볼 학부모가 줄었다 하더라도 마음이 안 좋은 것은 안 좋은 것이다. 여동생은 초등학교 1학년인데도 3월에 적응이 끝나서 학교에 혼자 가고 있는데 느린 오빠는 내가 무조건 데려다줘야 한다. 설마 6학년 때까지 이러진 않겠지, 괜한 고민을 해본다. 초등학교 1학년 때는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사 선생님을 만나서 어느 순간부터 내가 정문에서 손을 흔들어줘도 됐다. 그러면 아이는 실내화를 갈아 신는 현관까지 냅다 달려가서 신발을 갈아신고는 자기 교실로 알아서 들어갔다. 그렇게 학교에 잘 적응하는 듯 보이다가 초등학교 2학년에 모든 것이 후퇴했다. 지도사 배치가 불발되고 소통이 안 되는 특수교사가 아이를 맞이했는데 아이를 보자마자 손을 꼭 잡고 데리고 가버린 것이 화근이었다. 1년 내내 그런 모습이 반복되니 아이는 이제 정문에서 혼자 들어가는 법을 잊어버렸다. 올해부터는 일부러 정문에서 들어와서 중반 즈음에 아이 손을 놓고 들어가라고 연습을 시켜보는 중이다. 1학년 때의 지도사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아이가 똘똘해서 저학년 때 확 끌어주면 다 할 것 같다고 말이다. 그러니 자기를 믿고 정문에서 아이를 들여보내라고 하셨었다. 이제 그 지도사 선생님은 없지만 내가 다시 아이를 믿어봐야할 때가 온 듯 하다.
우울하게 걷고 있노라면 누군가가 와서 말을 걸 때가 있다. 느린 아이의 일반 학급 친구들이다. 아이들은 참 예쁘다. 어제는 느린 아이가 자리에도 잘 앉고 글씨도 잘 썼다며 재잘재잘 이야기해준다. 또, 학기 초에는 자리에서 괜히 일어날 때가 많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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