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 중간정산] 왼쪽 입꼬리도 성형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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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mpman84 · 방송사에서 일하는 직장인
2024/05/08
 때는 신입사원 시절. 하루는 사무실이 한산했다. 창문 블라인드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햇살, 나른한 소리를 내는 타닥타닥 타자와 딸깍딸깍 마우스 클릭음, 오늘따라 잠잠한 사무실 전화기와 팩스기. 종종 이렇게 적요한 금요일 오후를 맞이할 때가 있다. 남은 건 가벼운 발걸음으로 퇴근하는 일뿐.
 
 오후 네 시. 딱히 바쁜 일이 없으니 부장이 티 타임을 가지잔다. 물론 정신없이 바쁠 때도 그놈의 티는 매일 마시기는 한다. 부원들이 한데 모여 커피와 과자를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눈다. 이를테면 아이가 학교에서 어땠고, 어제 야구 경기 결과가 어떠했으며, 요즘엔 무슨 영화와 드라마가 인기고, 부동산과 주식과 자동차에 관한 얘기를. 그러던 중 수다스러운 계약직 A가 지나가는 말로 물었다.

 "부장님, 혈액형이 어떻게 되세요?"
 
 별 쓸데없는 물음에 부장은 쓸데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A형도 B형도 아니야. 내 피는 손 형이야. 손 씨니까"

 일순 1초 정도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반 박자 늦게 터져 나오는 웃음들. 금요일 오후의 평화를 무참히 깨는 사나운 소리들이었다. 나 역시 아주 웃기다는 표정을 억지로 지으면서, 하도 웃겨서 숨쉬기가 어렵다며 배를 움켜잡는 시늉을 냈다. 나는 그럼 김 씨니까 혈액형이 김 형이네, 김 형. 아하하하. 우스워 죽겠네.

 "부장님, 죄송합니다. 사고 나도 수혈은 못 해 드리겠는걸요. 저는 김 형이라. 아하하하"

 역시나 쓸데없는 말들이 이어지며 억지스러운 웃음꽃이 계속해서 피어났다. 그다음엔 또 무슨 대화를 주고받았더라. 기억났다. 부장은 요즘 부동산 투자에 열심이라고 했다. 자기가 산 땅보다 안 산 땅이 많다고. 다들 그런가 보다, 하는데 무슨 연유에선지 부장이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내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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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해야 좀 더 즐거울 수 있을까 고민하는, 열정 따위 없는 룸펜이고 싶습니다. 먹고 살아야 해서 어느 지상파 방송사에서 10여년째 일하고 있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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