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북 항쟁 44주년이 주는 의미

이종철
이종철 · 전문 에끄리뱅
2024/04/24
지난 4월 21일은 강원도 오지의 탄광인 사북에서 광부들이 항쟁을 일으킨지 44주년이 되는 날이다. 부마 항쟁이나 광주 항쟁에 대해서는 언론 보도가 끊어지지 않고 있지만, 사북 항쟁에 대해서는 거의 외면하고 있다. 다음 글은 사북항쟁 동지회의 청탁을 받고 쓴 글이다.


올해는 강원도 오지의 사북에서 광부들이 항쟁을 일으킨지 44주년이 주는 해이다. 그런데 사북 항쟁은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부마 항쟁과 광주 항쟁에 비해 그 인지도가 현저히 낮다. 부마항쟁은 유신 말기인 1979년 10월 16일에서 20일까지 진행되었고, 광주 항쟁은 1980년 5월 18일부터 28일까지 진행되었다. 사북 항쟁은 그 중간인 1980년 4월 21일 일어나 23(24일)일까지 나흘 동안 진행되었다. 이러한 항쟁들은 모두 유신 독재의 박정희 장기 집권 체제가 붕괴되고, 권력의 공백기를 틈타 전두환 군사 정권이 폭력적으로 등장한 시기에 일어난 민중 항쟁을 대표하는 사건들이다. 부마항쟁은 유신독재의 종말을 앞당기는 계기가 되었고, 사북 항쟁은 강원도 오지의 탄광 지대에서 광부들의 생존권 투쟁이었으며, 광주 항쟁은 전두환이 집권을 위한 희생양으로 광주의 시민들을 학살한 사건이다. 그러니까 1980년을 전후로 순차적으로 일어난 사건들은 민중 운동사에서 각기 중요한 의미를 띠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사북 항쟁은 대외적으로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고, 국가 폭력의 희생자들에 대한 보상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이유로는 여러 가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을 이러한 낮은 평가와 사후 보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점을 살피면서 그 원인을 구명하고자 한다. 아울러 다른 항쟁들과의 비교 차원에서 사북 항쟁에 대한 정당한 역사적 평가를 요구하고자 한다.

부마 항쟁은 유신 말기 부산과 마산을 중심으로 대학생들이 일으킨 사건이다. 조국의 근대화를 기치로 내걸고 5.16 혁명(쿠데타)을 일으킨 박정희 정권은 3선 개헌을 통해 장기 집권의 기반을 만들더니 1970년대 들어와서는 국제 환경의 변화를 빌미로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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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비판》와 《일상이 철학이다》의 저자. J. 이폴리뜨의 《헤겔의 정신현상학》1(공역)2, G. 루카치의 《사회적 존재의 존재론》 전4권을 공역했고, 그밖에 다수의 번역서와 공저 들이 있습니다. 현재는 자유롭게 '에세이철학' 관련 글들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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