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의 표식

soulan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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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8
금남로 1가에 서서 문득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은 거대한 도시의 제祭가 아닐까 하는.       

2017년 오월의 전야제   

광주는 특별한 도시가 아니다. 다른 지역들처럼 일자리는 언제나 부족하고 청년들은 도시를 떠난다. 정치적으로 야성을 잃지 않아 온 도시라지만 일상의 정치는 똑같이 비루하다. 서로의 욕망을 드러내며 추문으로 버글거리기도 했다가 어느 날 소리 없이 사그라지는, 적당히 부패하고 적당히 살만한 다른 도시들과 별 다르지 않은 일상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월이 되면 광주는 전혀 다른 도시가 된다.       

매년 열리는 5.18 전야제는 광주의 심장으로 불리는 금남로 한 복판에서 진행된다. 이웃집 할아버지와 할머니, 동네 아주머니와 아저씨, 학교 선생님들과 학생들, 수많은 사람들이 한날 한 곳으로 모여든다. 사람이 많이 모이면 일어나기 마련인 실랑이 하나 없이 그렇게 모인 사람들은 도로가에 전시된 사진이나 팸플릿을 살펴보거나 행진에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풍악을 울리기도 하고 민중가요를 부르기도 하고 많은 소리들이 한데 섞이지만 어딘지 차분하고 조용하게, 작은 실핏줄이 모여 거대한 동맥을 이루는 것처럼 소란스러운 일상에 묻혀 들리지 않던 낮은 박동이 하나의 거대한 북소리로 울려 퍼지는 순간, 그렇게 그날의 금남로는 정말 광주의 심장이 된다.             

생각해보면 광주는 많은 이들의 제사가 며칠 간격으로 같은 날일 수밖에 없는 도시다. 무등산이 바로 보이는 옛 도청 앞 분수대 앞까지, 하얀 한복을 입고 행진하는 오월 어머니들의 모습은 그 사실을 새삼 절감하게 한다. 한 도시 전체가 올리는 거대한 제, 어머님들은 여전히 치유되기 어려운 아픔을 안고 어깨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함께 걷는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흰 한복자락이 마치 그대로 금남로 끝에 와 닿아 있는 무등산 기슭을 타고 넘어 하늘로 향할 것 같이 휘날린다. 행진을 하는 이들도 그 행진을 지켜보는 이들도 그 깊은 슬픔과 그리움의 제에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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