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청년 전태일기념관

김선태 · 동화를 쓰는 작가 신문논설도 썼음
2022/07/31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기념관 
   
청계천의 물소리가 들리는 곳. 전태일이 분신한 다리가 보이는 거리의 한 건물이 온통 무슨 글씨로 뒤덮여 있다. 가까이 다가서니 건물 벽을 뚫고 뛰쳐나오는 모습의 전태일상이 보인다. 
우리나라가 산업화와 경제성장의 몸부림을 치기 시작할 무렵의 우리 무역의 가장 중심이 되었던 청계청의 봉제공장들. 그 속에서 마치 케이지 속의 닭들이 종일 몸을 움직일 공간조차 허락되지 않는 속에서 물과 모이를 먹고 오직 달걀을 낳는 기계 일수 밖에 없듯. 우리 나라의 어리고 젊은 청춘들은 종일 자신 앞에 놓인 미싱에서 박아져 나오는 옷감들을 바라보며 목마름을 마른 침으로 막아가면서 한 장의 봉제품이라도 더 만들어내어야만 하는 미싱의 한 부품이 되어 살아가고 있었다. 
일어서면 고개가 구부려저야 만 하는 낮고 옆사람과의 간격도 옷감이 드나들 수 있는 공간 이외에는 허락되지 않은 인간 케이지 속에서 하루 18시간에서 20시간 가까이나 지난한 노동을 하여야 했던 사람들의 아우성이 모여 만들어진 청계노조. 우리나라 노조운동의 근원지가 되었고, 그의 분신으로 우리나라의 노동운동의 실태가 세상에 까발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아픈 역사의 현장을 그리고 분신이라는 가장 극단적인 방법으로 만이 겨우 세상에 존재를 알릴 수 있었던 그 아픔을 새긴 기념관이 바로 이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기념관]이다.
전태일은? 
아버지가 사기를 당하여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서울로 올라와 청계천 피복 공장에 취직하였다. 1965년에는 청계천내 삼일회사 재봉사로 일하다가 강제 해고된 여공을 돕다가 함께 해고되었다. 이후 한미사의 재단보조로 있다가 재단사가 사장과의 갈등으로 해고되자, 그가 재단사가 되었다. 1968년 근로기준법의 존재를 알게 되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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