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 중간정산] 당신들은 그래도 SKY 나왔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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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mpman84 · 방송사에서 일하는 직장인
2024/04/29
 노을이 물들어가는 개와 늑대의 시간에 광화문을 걷다가 인상적인 장면과 마주쳤다. 오토바이 배달 청년이 신호등 빨간불에 걸려 잠시 한숨 돌리는 모습이었다. 모두가 쌩쌩 달리는 와중에 주어진 잠깐 동안의 휴식 시간. 온 몸에 묻어 나오는 피로함이 몇 발짝 떨어져 있는 나에게도 생생히 전해졌다. 담배라도 한 개피 꺼내 물었으면 조금이나마 피곤을 풀었으려나, 그러기엔 빨간불에서 초록불까지의 시간이 너무 짧다. 신호가 바뀌고 오토바이는 이내 다시 달리기 시작해서 시야에서 멀어져갔다. 먹고 산다는 게 이토록 고달픈 일이라는 걸 다시금 느꼈다.

 회사에서도 동료들과 함께 종종 힘들었던 시절의 이야기를 한다. 어찌 보면 내가 더 힘들게 살았네, 네가 덜 힘들게 살았네, 라면서 '지난날의 고난 대결' 같이 느껴지기도 하는 대화들이다. 별 의미없는 대결의 시작은 반지하에 살던 경험담부터다. 창문도 없는 좁은 지하방에서 살던 무렵 여름 장마 때 물이 새서 하마터면 잠자리에서 익사할 뻔한 경험. 이어서 지갑에 단돈 백 원이 모자란데 어디 빌릴 데도 없어 눈 앞의 컵라면 하나를 사지 못해 주린 배를 움켜쥐던 설움을 토로하고. 이에 질새라 생일날마저도 하루종일 알바를 하고서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오는데 갑작스레 내린 소나기에 홀딱 젖어 빗물인지 눈물인지를 뚝뚝 흘렸던 때의 기억을. 급기야는 평생을 해도 질리지 않는다는 군대 이야기까지 소환하고야 마는데. 이런 데서 지기 싫다는 듯 저마다 구구절절한 사연들을 펼쳐낸다. 이기더라도 이긴 게 아닌, 지더라도 지는 게 아닌 이상한 대결의 장이다.

 그래도 우린 지금은 어엿한 회사원이 돼서 밥벌이를 하고 살잖아? 그건 그렇죠. 힘들었던 시절은 흘러간 옛 추억이라며 이제 웃으며 이야기하고, 나 때는 말이야, 를 입에 달고 사는 아저씨들의 대화를 하고 있다. 이런 아저씨들의 이야기를 곁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20대 청년 비정규직 K가 입을 열었다. 계약 기간이 끝났으니 앞으로 어떻게 먹고 살 거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한참 후에서야 한다.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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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해야 좀 더 즐거울 수 있을까 고민하는, 열정 따위 없는 룸펜이고 싶습니다. 먹고 살아야 해서 어느 지상파 방송사에서 10여년째 일하고 있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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