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훈 번역가를 위한 뒤늦은 변명
2023/03/27
IPTV 송출용 다큐멘터리의 번역자막을 검수하는 6년 정도 부업으로 해왔다. 번역이 아닌 검수를 하고, 영화가 아닌 다큐멘터리를 작업했지만, 영상물을 번역하는 일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를 하는 입장에서, 최근 몇 년간 가장 많은 비판을 받아온 번역가 박지훈씨를 위해 뒤늦은 변명을 해보고 싶다. 박지훈 번역가의 어떤 오역들은 분명 변명의 여지가 없는 심각한 오역임에 분명하지만, 최근의 ‘오역 논란’은 다소 과열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내가 경험한 것이 번역작업이 아니고, 극장 상영물도 아니므로 오해나 추측이 섞여 있을 수 있음을 미리 알린다.
어떤 번역이 오역이고, 이것은 온전히 번역가의 책임이라고 비난하기에 앞서 영상물 번역의 특성을 이해해야 한다. 영상물을 번역하는 일은 기본적으로 1:1 번역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즉 원 대사를 100% 정확하게 옮기는 것은 많은 경우 불가능하다. 각자의 속도로 소화할 수 있는 책과 달리, 영상물은 제작자가 의도한 속도를 따라야 하기 때문에 그렇다. (재생속도를 높이거나 늦추는 것은 여기서는 잠시 예외로 하겠다.) 오역 논란의 대부분은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자막 지속시간의 문제
우선 자막 지속시간(Duration)의 문제. 예컨대 ‘너는 뭘 좋아하느냐’는 어른의 물음에 아이가 ‘바다를 좋아한다’고 답하는 장면을 떠올려보라. 영어에는 존댓말 개념이 없고, 앞서 ‘좋아하느냐’는 맥락이 있기 때문에 아이는 간단하게 “Sea.”라고 답할 수 있다. 이걸 적당하게 번역하면 “바다요.” 정도가 될 텐데, 영어로는 한 음절에 불과한 말이 자막에서는 세 음절로 늘어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런 문제가 문장 단위가 되고 배우의 말이 빠른 편이라면 영어로는 1~2초 만에 지나가는 말을 자막으로는 4~5초를 읽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는데,...
미디어스, 경향신문에 칼럼을 연재했고, 연재한 칼럼을 묶어 『지금은 없는 시민』(한겨레출판)을 냈다. 진보적 담론 확산과 건강한 토론문화 구축을 목표로 하는 '토론의 즐거움'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민주주의와 시민의 문제에 대해 주로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