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 중간정산] 약 없으면 안 되는 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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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mpman84 · 방송사에서 일하는 직장인
2024/05/23
 친구 J가 죽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 B의 입을 통해서 전해 들은 생각지도 못한 비극적인 소식이었다. J가 지인들의 돈을 떼먹고 해외로 도주했다는 데서 끊겼던 안부는 결국 이렇게 새로고침 됐다. 좋지 않은 결말이라 그랬을까. 부고 소식이 나에게까지는 닿지 않아서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걸 전혀 모르고 살았다.

 J는 소위 잘 나가는 금융맨이었다. 서울로 올라온 친구들 중에서 취업도 가장 빨랐다. SNS에는 멋들어진 수트를 입고 있거나 해외의 근사한 휴양지에서 양주를 마시는 사진 따위들이 자주 올라왔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가장 친한 고향 친구부터 시작해서 중고교 동창, 대학 동기들과 선후배, 직장 동료들까지 가능한 한 범위의 모든 지인들에게 돈을 빌린 뒤 사라졌다. 대체 그놈의 선물 투자가 뭐길래. 그는 몇 년 간의 해외 도피 생활 끝에 결국 한국으로 되돌아왔다. 귀국하자마자 가장 친했던 고향 친구 B를 만나서 소주 한 잔을 기울이며 사과했다고 한다. 그게 J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우리가 만 서른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J와의 마지막 연락은 몇 년 전 그가 나에게 돈을 빌려달라는 내용의 전화를 했을 때였다.

 마침 전셋집을 구하느라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모으고 그걸로도 모자라 대출 때문에 은행을 들락날락하던 시기였다. 당장 다음 달 카드 값을 갚기에도 간당간당한 통장 사정 때문에 지금은 어렵다, 미안하게 됐다며 전화를 끊었다. 여유가 있었다면 1~2백만 원 정도는 빌려줬을 텐데. 사정을 몰랐기에 도와주지 못해 못내 미안했다.

 그때 돈을 빌려줬더라면, 그래서 다른 이들처럼 나도 돈을 떼인 '피해자 OO번'이 되었더라면 J에게 미안해하지 않고 미워하는 마음만 남았을까. 하지만 미안함에 미움을 더한다 해서 미안한 감정이 묽어지지는 않는다. 요리로 치면, 짜다고 해서 설탕을 한 꼬집 집어넣더라도 싱거워지기는커녕 되려 짠맛과 단맛이 둘 다 겉돌며 남는 것처럼 말이다.

 입 밖으로 다시 꺼내기도 싫었을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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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해야 좀 더 즐거울 수 있을까 고민하는, 열정 따위 없는 룸펜이고 싶습니다. 먹고 살아야 해서 어느 지상파 방송사에서 10여년째 일하고 있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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