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먼저 온 어르신을 새치기했다

프랑
프랑 · 사회복지 연구활동가
2024/02/18
직장인에게 가장 귀찮은 일 중 하나는 바로 은행 업무다. 아무리 인터넷 뱅킹, 모바일 뱅킹이 보편화됐다지만, 필연적으로 은행에 직접 방문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는 아깝지만 휴가(반차)를 사용해야 한다. 특히 이번 아파트 대출을 하기 위해 은행과 행정복지센터, 구청 등에 얼마나 많이 들락날락거렸는가. 가야 하는 횟수를 미리 따져보고 남은 연차를 계산하기도 했다. 그렇게 연차를 써가며 은행에 방문해 팔이 빠지도록 많은 서류에 '동의함'과 서명을 기계처럼 해댔다.

2024년이 되자 연차는 리셋됐다. 1년에 쓸 수 있는 횟수는 너무 작고 소중해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아파도 웬만하면 참고, 개인적인 일이 있어도 최대한 주말에 해결할 수 있게 세팅을 해놓았다. 그러던 어느 날, 대출한 은행의 담당자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고객님, 안녕하세요. 너무 죄송한데요..."

목소리에서부터 죄송함이 느껴졌다. 그 죄송함에서 무언가 잘못 됐고, 휴가를 써야 될 수도 있음을 직감했다. 대출 당시 은행 담당자도 내가 휴가를 쓰고 왔다는 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사과부터 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대출받으러 오셨을 때, 오랫동안 서류 다 잘 작성해 주셨는데요. 서류 하나가 빠졌네요. 제가 챙겼어야 됐는데 놓친 거라, 죄송합니다."

일을 하다 보면, 또 그 많은 서류를 고객에게 내밀며 서명을 받는 일 또한 쉽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래도 내 소중한 연차가 먼저 떠올랐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연차... 써야 되나요?"라는 물음이 자동적으로 튀어나왔다. 담당자는 본인도 직장인이니 연차에 대한 소중함을 아는 듯 웃으며 그럴 필요가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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