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서툰 영업은 영업이 아니었음을

이건해
이건해 · 작가, 일본어번역가. 돈과 일을 구함
2024/01/10


제법 오랫동안 블로그와 커뮤니티 활동을 하면서 무슨 물건이나 서비스나 작품을 소개하고 독자들의 반응에서 자기 효능감을 충족하는 생활을 한 터라 지금도 좋은 게 있으면 주변에 소개하고 권유하고 영업하기 일쑤다. 내가 본 것은 물론이고 써본 것, 써보지 않은 것, 쓸 수 없는 것도 싸고 좋아 보이면 영업했고, 쇼핑몰에서 점원의 편에 선 것처럼 행동하기도 했다. 그것은 나의 농담이자 타인의 행복을 바람으로써 나의 행복의 일부를 구성하는 행동 양식이기도 했다. 과연 이것이 올바르다고 할 수 있는 것인지는 나도 다소 의문이 있지만, 나 개인의 금전적 이익을 목적으로 두거나 허위 사실을 이용하여 남을 속여먹은 적은 없으니 아주 부정적인 짓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2023년 한 해 동안에도 나는 주변 친구들에게 잡다한 물건을 사라고 권유했고 대부분을 실패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애를 쓰고도 사게 할 수 없었던 것은 스마트폰이었다. 제법 오래 되어 성능이 떨어지는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친구가 둘이나 있어서 근래에 출시된 모델로 변경하길 권했으나 설득할 수 없었던 것이다.

물론 나도 물건을 아끼는 게 좋은 일이라고 라디오 전파까지 써서 전국에 방송을 해댄 작자인 만큼 멀쩡한 스마트폰을 자주 바꾸어대는 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두 명의 케이스는 변경 권유에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 일단 한 명은 전세 사기 이슈가 매우 시끄러울 때 이사를 앞두고 있었는데 아이폰을 쓰고 있었던 터라 최소한 한동안이라도 통화 녹음이 가능한 안드로이드 기기를 쓰는 게 그나마 안전하지 않을까 싶었다. 녹음이 가능하다는 이유로 사기가 사라질 만큼 한국 사회가 미적지근하지 않으니 관점에 따라선 별반 쓸모없는 짓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블랙박스가 사고를 막을 순 없어도 법적으로 대단히 유리한 안전장치가 되는 것처럼, 안드로이드를 이용해서 비교적 안전한 영역에서 거래를 하길 바랐다. 덤으로 어떻게도 좋게 봐줄 수 없는 카메라를 탑재한 구형 아이폰으로 몹시 풍화된 기억만을 남기고 나처럼 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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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미스터리를 주로 쓰고 IT기기와 취미에 대한 수필을 정기적으로 올립니다. 하드보일드 미스터리 소설 “심야마장-레드 다이아몬드 살인사건”으로 데뷔. SF호러 단편소설 ‘자애의 빛’으로 제2회 신체강탈자문학 공모전 우수상. 제10회 브런치북 출판공모전 특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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