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영화 감독은 도둑이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인증된 계정 · 다른 시각을 권하는 불편한 매거진
2024/01/18

  •  김경수(영화평론가)



〈거미집〉(2023), 김지운,출처-다음영화

김지운 감독의 오랜 팬으로 그의 자전적 영화를 기다렸다. 감독 필모 전반에 깃든 부조리라는 주제의식과 거기에 인용되는 온갖 레퍼런스, 장르 문법 안에서 그 레퍼런스가 조합되는 방식이 선명히 보이는 데에 비해서, 그 이면의 김지운이라는 인간을 보기가 힘들어서다. (김지운 감독의 사적인 이야기는 2008년에 출간된 그의 에세이《김지운의 숏컷》에서 마음껏 볼 수 있기는 하다.) 이는 영화마다 장르를 달리하는 스타일리스트 김지운 감독의 개성이다. 블랙코미디부터 호러, 서부극, 슬래셔, 에스피오나지, SF까지 거의 모든 장르를 섭렵했다고 하더라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다른 장르에 도전하는 실험 정신을 고수하면서 (감독 본인의 말대로라면) 인생의 아이러니와 소통이 부재한 부조리한 인간 군상을 담으려 한다. 매번 다른 도전을 하는 감독의 심정을 더 궁금해하는 것은 평론가로 마땅히 가질 수 있는 호기심이다. 그의 신작〈거미집〉(2023)의 재미는 인간 김지운이 영화 곳곳에서 보인다는 것이다. 감독의 말대로 이 영화에는 그의 자전적인 경험이 다소 반영되어 있어서다. 완성도와는 별개로 본인의 필모를 집대성하고, 그의 무의식이 드러나기에 흥미롭다.

〈거미집〉은 1970년대 무렵의 한국 영화 현장을 배경으로 한다. 이틀 동안 영화 속 영화 “거미집”의 엔딩을 재촬영해야만 한다는 집념에 눈이 먼 감독 김열(송강호)을 중심으로 좌충우돌하는 인간 군상을 담은 블랙코미디다. 김열 감독은 머리에 맴도는 엔딩을 찍으려 신성 필름의 백 회장(장영남)에게 촬영을 재개하게 해달라고 부탁하지만 실패한다. 하지만 제작사를 물려받기로 예정된 제작자 미도(전여빈)가 김열의 시나리오에 감동한 나머지 촬영을 허가한다. 김열과 미도는 문공부의 검열을 무시하고 촬영을 강행한다. 조감독은 배우에게 이틀이 아니라 하루 만에 촬영이 끝날 것으로 거짓말을 한다. 문공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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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르몽드의 대표적인 자매지로 약칭은 "르 디플로"입니다. 국제뉴스를 다루는 월간지로 30개 언어로 51개 국제판이 발행되고 있다. 조르조 아감벤, 아니 에르노, 알랭 바디우, 슬라보예 지젝, 피에르 부르디외 등 세계적 석학들이 즐겨 기고했으며, 국내에서는 한국어판이 2008년10월부터 발행되어 우리 사회에 비판적인 지적 담론의 장으로서 각광받고 있습니다. 노엄 촘스키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를 일컬어 "세계를 보는 창"이라고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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