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해야해. 방송은.

soulandu
soulandu 인증된 계정 · 영상, 방송
2024/05/11
한 달여간 준비한 대회 중계가 끝났다. 규모도 크고 사고의 위험도 높은 편이라 좀 긴장했었는데 늘 그렇듯 준비한 시간에 비해 방송은 순식간에 종료된다.

역시 생방송이 좋다. 신입일 때는 정신없이 긴장하던 시간이었는데 이제는 그 매력을 안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 방송은 종종 말하듯 우주를 항해하는 것처럼 서로를 믿고 암흑 속을 전진하는 일이다.

부조정실에 앉아 이곳보다 몇백 배는 정신없는 중계차 소리를 인터컴을 통해 전해 듣는다. 현장을 준비시키는 연출 선배의 소리, 오디오니 비디오니 각 종 기계를 정비하는 기술팀의 분주한 투닥거림, 각각의 카메라를 점검 중인 촬영감독들과 조연출의 씩씩한 대답들. 나는 소리를 죽이고 그 소란스러움에 귀를 기울이다 간혹 현장이 놓치는 부분들, 체크해야 할 것들을 재빠르게 밀어 넣는다. 송수신기의 버튼을 누르고 그 소음들 사이로 내 목소리가 뒤섞여든다. 모두의 소리가 하나로 뒤섞이며 만들어내는 이 정신없는 소음들!

사람들은 웃음으로 긴장을 해소하려는 경향이 있다. 현장의 규모가 크면 클수록 실없는 농담도 많아진다. 각 지역에서 모인 사람들이라 사투리도 그 지역의 것들이다. 요란스러운 농담이 인터컴을 타고 도는 동안 가장 내향적인 사람들도 꼭 한 마디씩을 얹는다. 마치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규칙이라도 있는 것처럼. 예민한 사람들은 언어에 날카로운 모서리가 달려있지만 누구도 섣불리 남을 탓하거나 책임을 전가하지 않는다. 오랜 시간을 현장에서 보낸 백전노장들일수록 더 그렇다. 탓하는 건 시간만 축내는 짓이다. 현장에서는 무조건 문제를 해결하는데 집중하는 게 현명한 일이다. 그게 일종의 프로토콜 같은 거다.

비가 내린다고 했는데 하늘은 쾌청하고 전파로 화면에 전달돼 온 나주의 바람은 산들거린다. 여전히 사람 많은 곳에는 반드시 모여드는 정치인들과 으레 해야 하는 수많은 축사들을 뒤로하고 한참을 기다렸던 싸이클들이 쏜살같이 도로 위로 쏟아져나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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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로 일하고 있습니다. 영상이 지겨울 때 이것 저것 쓰고 싶은 글을 씁니다. 주로 정리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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