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청년이 산후 조리 하는 방법
장애 청년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이미 7개월 정도가 지난 후였다. 본인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이 당황했다. 일년에 한 두번만 교회에 오던 청년이었는데 임신 이후 매주 교회를 오기 시작했다. 도와줄 곳이 없어 막막한 청년과 주변 사람들이 교회의 도움을 바라면서 교회의 고민도 시작되었다. 교회에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어떻게 부모도, 남편도, 친인척도 없는 장애 청년이 지역사회에서 애를 낳냐, 미혼모 시설에 들어가야 한다. 입양을 보내야 한다. 지역사회에서 낳아야 한다. 아무도 책임질 수도, 결정할 권한도 없는 의견들이 공허하게 맴돌았다.
나는 탈시설을 지지하고 탈시설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사회복지사다. 우리 사회는 누군가의 도움이나 지원이 필요한 사람들을(장애인, 노인, 아동 등) 시설이라는 곳에 “수용”하여 사회에서 보이지 않도록 하는 방식으로 “처리”해왔다. 그 속에서 평생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존엄과 다양성은 허용되지 않고 개별의 삶은 무시되는, 시설이란 곳은 너무 구시대적 사회복지 방식이었다.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도록 지원시스템을 만들고 시설을 없애야 한다는 것이 탈시설의 주장이다.
하지만 장애 청년이 막상 아이를 낳게 되자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낳아야 한다고 얘기할 수 없었다. 너무 막막했고 아이가 위험할 것이 우려되었다. 주변에 수소문하여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시설을 알아보니, 다들 장애 엄마는 시설에서 잘 받아주지 않을꺼라면서 “애란원”이 장애 엄마를 받아주니 거기를 알아보라고 하였다.
애란원은 연세대 동문에 위치한 역사 깊은 기관이다. 미국 선교사에 의해 1960년대에 설립된 곳으로 내가 대학을 다닐 때 기관방문을 하기도 했었고, 거리 청소년 지원하는 사업을 하면서 임신한 청소년들을 연계 시킨 곳이기도 하다. 미혼모가 아이를 낳고 아이와 함께 1년까지 머무를 수 있는 임시 생활 시설이다.
애란원 입소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처음 애란원에 문의를 했을 때는 출산예정을 두 달 정도 앞둔 때였는데, 자리가 없어 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