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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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와 지역 동시에 살리는 ‘탄소중립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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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2
에디터 노트
오늘은 탄소중립에 대한 색다른 실천 방안을 소개합니다. 유역과 기초지자체 단위로 '탄소중립 마을'을 지정하고 다양한 인센티브제도를 제공해 흡수원(산림)을 관리하는 방법입니다. 지역도 살리고 탄소중립도 앞당길 수 있지요. 국가나 기초지자체 등 거시적 관점에서 바라보던 탄소중립을, 마을이라는 지리적 단위로 바꿔서 바라보니 새로운 해결책이 보입니다. 이우균 고려대 오정리질리언스연구원장 겸 지속발전연구소장·환경생태공학과 교수가 설명합니다.


우리 인류에게 많은 편익을 가져다주는 2·3차 산업은 온실가스 배출원이다. 하지만 식생이 있는 토지는 온실가스 흡수원(sink)이다. 국제사회에서는 산림지(forest land), 농경지(cropland), 초지(grassland), 습지(wetlands), 정주지(settlements), 기타 토지(other land) 등을 온실가스 흡수원으로 보고, 이들을 ‘토지이용, 토지이용변화 및 임업(LULUCF: Land Use, Land Use Change and Forestry)’ 범주로 묶어 온실가스 산정 체계에 포함하고 있다.
 

탄소중립을 위한 유역 단위의 기후스마트 토지 관리

탄소 흡수원은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CO2)를 흡수한 뒤 광합성을 통해 나무와 토양에 탄소(C)를 저장함으로써 온실가스 감축에 기여하고 있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International Union for Conservation of Nature)에 따르면, 지구의 산림 면적은 전체 육지 면적의 약 3분의 1 정도이며, 매년 약 26억 톤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기후변화 대응에 기여하고 있다(1). 한국에서도 국토의 3분의 2(63%)를 차지하고 있는 산림으로부터 2019년 기준 4320만 톤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것으로 보고돼 있다. 이는 한국의 국가 총 배출량(7억 140만 톤)의 약 6.2%다 (그림 1) (표 1).

그러나 잘못된 토지 관리는 배출로도 이어진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위원회(IPCC)의 ‘기후변화와 토지 특별 보고서’에서는 토지이용에 따른 온실가스배출량(AFOLU, Agriculture, Forest and Other Land Use)이 총배출량의 23%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했고,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역시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약 25%가 토지부문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하고 있다(1). 한국에서도 2019년 기준으로 농경지에서 410만 톤, 습지에서 30만 톤 배출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IPCC에서는 토지 기반 흡수원의 역할 없이는 탄소중립 달성을 불가능하다고 보고하고 있다(2). 따라서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서는 배출원에서 발생하는 배출량을 줄이는 것뿐만 아니라 산림 등의 토지 기반 흡수원로부터 배출량은 줄이고 흡수량을 늘려서 순흡수량을 최대화해야 한다 (그림 2).
[그림 2] 전 지구 평균 기온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 이내로 억제하기 위한 모델 경로 별 전 지구CO2 순 배출량(1). 농업, 산림 및 기타토지 이용(AFOLU, Agriculture, Forestry and Other Land Use), 바이오에너지와 탄소포획저장(BECC, Bioenergy with Carbon Capture and Storage).

한국의 ‘2050 국가탄소중립·녹색성장계획’에서는 에너지, 산업, 건물, 수송, 폐기물, 농축수산 등을 배출원으로 LULUCF를 흡수원으로 구분해 순배출 영점화 전략(net zero emission)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 토지 측면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농축수산과 흡수원 부분이다(4). 농축수산은 1차 산업으로서 배출원으로 분류되지만, 농축수산의 생산 기반인 농지, 초지 등은 흡수원으로 구분되고 있다. 농축수산에서 임업이 빠진 것을 보면, 산림은 배출량 없는 100% 흡수원으로 간주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임업을 흡수원 관리 산업으로 보지 않으면서, 임업의 생산 기반인 산림자원을 흡수원 관리 대상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즉, 흡수원을 산업으로 관리할 것인지, 또는 자원으로 관리할 것인지가 명확하지 않다 (그림 3).
[그림 3] 한국의 ‘2050 국가탄소중립·녹색성장계획’에서는 에너지, 산업, 건물, 수송, 폐기물, 농축수산 등을 배출원으로 LULUCF를 흡수원으로 구분해 순배출 영점화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이솔

국제사회가 흡수원을 LULUCF라는 용어로 부르는 이유는 ‘토지를 이용하고, 그 변화를 파악하면서 흡수원을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고, 이에 따르면 산림지의 흡수원은 임업을 통해 관리해야 한다. 즉, 산림지, 농경지, 초지, 습지 등의 토지를 기반으로 하는 임업, 농업, 축산업, 수산업 등의 산업을 통해 흡수원을 관리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의 탄소중립계획에서도 토지 기반 산업을 통해 흡수원 관리 방향이 정립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국내 면적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산림과 농지는 소규모 필지 단위로 구분돼 있고, 그에 따라 산지 및 농지를 기반으로 하는 임업 및 농업은 소규모로 분산돼 이뤄지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규모를 갖춰 체계적으로 흡수원을 관리하기가 어렵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과학적으로는 유역 및 경관 단위로 흡수량 및 배출량을 분석하고, 행정적으로는 농림업의 일선 부처인 기초지자체 단위에서 토지 기반의 산업으로 흡수원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5) (그림 4).
[그림 4] 유역단위의 집수구역(보통 200ha, 빗물이 상수원으로 흘러드는 지역으로서 주변의 능선을 잇는 선으로 둘러싸인 구역)으로 이뤄진 마을 단위로 흡수원 관리가 이뤄져야 한다.


탄소중립을 위한 기초지자체 단위의 기후스마트 흡수원 관리

고려대 오정리질리언스연구원에서 개발한 행정구역별 탄소흡수지도(3)를 보면, 산지와 산림이 많이 분포되어 있는 백두대간에서 많은 양의 이산화탄소가 흡수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주변이 산림으로 돼 있고, 주거지 및 사람의 활동 시설이 적은 지역일 수 있다. 흡수량이 많은 곳(지도에서 진한 지역)은 배출량이 적을 경우, 탄소중립이 달성됐을 수도 있다 (그림 5).
[그림 5] 국내 행정구역별 탄소흡수지도(총흡수량).


또한, 토지피복, 배출원 분포 등을 고려해 제작된 탄소배출지도(7,8)를 보면, 반대로 백두대간보다는 서쪽의 저지대에서 배출이 많이 이뤄짐을 알 수 있다 (그림 6).
[그림 6] 국내 행정구역별 탄소배출지도(총배출량).


배출량에서 흡수량을 뺀 탄소수지지도(carbon balance map)를 보면(7,8), 기초지자체까지는 탄소중립달성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읍면동 및 리 단위로 보면 탄소중립달성 가능성을 보이는 지역이 있다. 이는 기초지자체까지의 감축 활동은 국가의 지침을 지자체가 실행하는 하향식 정책 및 관리가 가능하지만, 흡수원 관리는 읍면동, 또는 마을(리) 단위로부터 시작하는 상향식 정책이 필요함을 시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림 7).
[그림 7] 국내 행정구역별 탄소수지지도(배출량-흡수량).

특히, 리(마을) 단위로 보면, 국내에 탄소중립달성 마을이 있다. 분포도를 보면, 산촌 마을의 공간 분포, 그리고 인구소멸 위험지역의 분포와 유사함을 알 수 있다(5). 이는 탄소중립 달성 가능성이 높은 마을은 산촌이면서 오지이거나 인구소멸 위험이 높은 지역일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국내 인구의 91%가 국토의 17%를 차지하는 도시 지역에 거주하는 것을 고려하면 충분히 이해되는 대목이다 (그림 8). 
 
기초지자체에서 탄소중립 달성 가능성이 높은 리(마을)부터 탄소흡수원 관리를 하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산림 관리 외에 농산촌 진흥사업을 함께 진행해야 한다. 기후변화 감축사업과 연계하면 배출원인 농촌 주택의 에너지 효율화 사업, 농업폐잔물 수거 및 처리 사업, 산불 및 산사태 예방 사업 등이 이에 해당할 수 있다. 기후변화 감축과 적응을 함께 하는 기후스마트 농림업이다. 좀 더 적극적으로는 지자체에서 생산되는 목재의 활용을 높이기 위한 목재 가공 공장 유치 및 운영, 생물다양성 증진과 생활 환경 개선을 위한 농산촌 재생사업, 자연문화 향토자원을 통한 방문객 유치로 생태계 서비스 내부화 사업 등을 진행할 수 있다.
[그림 8] 리(마을) 단위 탄소중립가능성지도(왼쪽)와 산촌 분포 지도(가운데), 인구감소 위험지역(오른쪽).


유럽 등 국외의 기후스마트 임업과 연계 사업에서는 인센티브 제도를 적극 도입하고 있다. 일정 규모 이상의 면적을 대상으로 토지 기반의 산업인 농림업을 통해 흡수원 관리와 현안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기후스마트 임업에서는 지자체-주민-소유자 간의 거버넌스가 필수다. 지자체의 기후스마트 정책이 주민과 소유자를 통해 실행되기 위해서는 유럽과 같은 인센티브 제도가 도입되어야 한다. 일정 규모 이상의 산림을 관리하는 산림 소유자 및 주민 간의 협력을 촉진하고, 목재 제품 활용 등에 보조금을 지원하는 정책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탄소중립 및 기후스마트 흡수원 마을 지정과 지원

온실가스 감축은 하향식으로 이행하거나 달성할 수 있다. 그러나 토지를 기반으로 하는 흡수원 관리는 구체적 장소에 기반하지 않은 하향식 정책으로는 실현하기 어렵다. 낮은 생산성과 수익성, 환경친화적 관리 의무 등의 어려움이 있는 산주 입장에서는 국가 차원의 탄소흡수원 관리에 대한 수용성이 낮을 수밖에 없다. 특별한 동기부여나 인센티브가 없는 한 산주들의 자발적인 탄소흡수원 관리를 기대할 수는 없다. 해외 기후스마트 농업 및 임업에서처럼 보조금, 세제감면 등 다양한 인센티브제도가 필요하다.
 
기후스마트 흡수원 관리는 유역 및 경관 규모에서 지역공동체(마을)의 발전을 도모한다. 따라서 탄소수지 측면에서 이미 탄소중립을 실현했거나 가능성이 높은 마을을 ‘탄소중립 마을’로 지정해 공동체 단위로 다양한 지원체계를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 단계에서 한국의 경우 국가, 광역 및 기초지자체 단위에서는 탄소중립 지역을 찾을 수 없다. 그러나 읍면동 및 리(마을) 단위로 탄소배출과 흡수를 비교한 탄소수지지도를 보면, 탄소중립 가능성이 높은 읍면동과 리(마을)가 보인다. 이런 지역을 좀 더 면밀히 조사하고 지역 협의체 운영가능성을 파악해 탄소중립 마을을 지정하고 지원책을 마련하면, 기후스마트 흡수원 관리에 대한 주민의 관심과 수용성이 높아질 것이다. 우리도 일본처럼 생활환경 정비, 주민복지 향상, 산촌 경제 활성화, 일자리 창출 등을 위한 산촌진흥사업을 국고보조사업과 지방단독시책의 유기적인 연계를 통해 통합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6). 
 
 

토지 기반 농림업을 통한 탄소중립 및 국토 균형발전 

한국은 황폐해진 산림을 성공적으로 복구한 나라다. 국가의 강력한 의지와 지원 속에서 마을 단위로 시행됐고, 황폐화에 따른 잦은 자연재난을 극복하면서 농산촌의 발전도 함께 이뤄졌다. 이런 면에서 한국의 산림 복구는 최근 대두된 자연 기반 해법에 부합하는 사업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는 농림업의 저수익성으로 농산촌이 공동화돼가는 상황과 함께, 기후변화 대응의 일환으로 산림지, 농경지, 초지, 습지 등 흡수원의 이산화탄소 흡수 기능을 유지 및 증진해야 하는 현실적 문제와 만났다. 더구나 기후변화로 산불과 산사태, 병해충, 침수 등 기상재해의 규모와 빈도가 증가하고 있어 이에 대한 예방 및 대비도 절실하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 및 녹색성장 기본법에서는 탄소중립 계획과 기후변화 적응계획을 수립하게 돼 있다. 여기에서는 이산화탄소 흡수원 관리와 산사태, 산불 등의 기후재난 대응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그리고 국가 차원의 2030 온실가스 감축계획, 2050 탄소중립계획 등에는 흡수원 관리가 포함돼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국가 차원의 계획이 산림사업 현장으로 이어지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 원인으로 필지 단위로 이뤄지는 산림 관리가 꼽힌다. 현재와 같이 산주의 신청으로 소면적의 필지(지번) 단위로 산림 관리가 이뤄져서는, 일정 규모 이상의 산림을 대상으로 해야 하는 흡수원 관리와 기후재난 관리를 제대로 할 수 없다 (그림 9). 
[그림 9]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 등 국제 이슈 해결에 기여하고 재난을 예방하기 위해, 미래의 산림 관리는 유역 및 경관 또는 지역 중심으로 이뤄지는 게 바람직하다. 이솔


산림 복구에 성공해 울창한 산림을 보유한 현시점에서 산림 관리는 지번 중심이 아닌 유역 및 경관 또는 지역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 산림 관리가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 등의 국제 이슈에 기여하게 되고, 산불·산사태 등 재난을 예방하고 관리의 혜택이 지역 주민에게도 돌아간다. 산림의 흡수원 및 생태계 관리, 농산촌 발전을 지금처럼 국가 주도로 할 것인지, 유역 단위 토지에 기반한 산업(농림업)을 통해 기후스마트 흡수원 관리 체제로 전환할 것인지에 대해 판단을 내려야 할 때다. 이 판단 결과에 따라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은 물론 국가 균형발전의 성패가 결정될 것이다.
 
*이 글은 ‘탄소중립시대의 기후스마트 임업’(5)을 기반으로 작성됐다.


글   이우균 고려대 오정리질리언스연구원장 겸 지속발전연구소장·환경생태공학과 교수
그림 이솔 과학일러스트레이터·약사
기획 사단법인 집현네트워크
시리즈 기획 윤제용 서울대 화공생명공학부 교수
편집 윤신영 alookso 에디터
더 나은 지식기반 사회를 향한 과학자·전문가 단체입니다. 상호 교류를 통해 지식을 집산·축적하는 집단지혜를 추구합니다. alookso와 네이버를 통해 매주 신종 감염병, 기후위기, 탄소중립, 마이크로비옴을 상세 해설하는 연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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