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E AM I; SEND ME

듀발
듀발 · 피해자를 돕습니다
2024/04/12
지금도 그렇지만 처음엔 '피해자'란 존재에 대해서 더 잘 몰랐다. 근무 첫해엔 그저 고객이라 긴장되고 무서웠고, 그런 피해자를 돕는다는 내 일이 너무 어마어마하게 느껴졌다. 일이 조금씩 익숙해진 후에는 피해자들이 무섭지는 않았지만 잔뜩 주의를 기울이며 이야기를 듣다가 기운이 쪽 빠진 채로 퇴근하기 일쑤였다.

2년차가 되고부터는 화가 났다. 피해자들이 안쓰럽고 그만큼 화가 났다. 왜 이렇게 피해자는 도와도, 도와도 계속 늘어나는가. 나는 하나인데 피해자는 하루에 수십명씩 새로 나타난다. 한 명을 돕는 데 몇 달이 걸리는데, 하루에 수십명씩 새로운 피해자들이 나타나는 시스템 속에서 나는 도와줘야 할 피해자를 원치않게 ‘선택’해야 했다.

특별한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기준은 세울 수 없었다. 그나마 세운 나름의 기준은 ‘피해가 심할수록 큰 범죄’라는 것이었다. 아무리 죄명이 ‘경범죄처벌법위반’일지라도 피해자가 일상이 파괴된 정도의 고통을 겪는다면 그것을 정말 ‘경범죄’라고 할 수 있을까.

피해자를 돕는 시간 동안 어쨌든 세상은 변해갔다. 21년 10월부터 스토킹을 처벌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가정폭력에 해당하는 죄명이 다양해졌고 가정폭력 피해가 발생한 가정 내의 아동이 있을 경우 정서적 학대를 검토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아동청소년에 대한 그루밍 성범죄도 처벌할 수 있게 되었다.

피해자에 대한 지원도 조금씩 나아졌다. 없던 제도가 생기기도 하고, 있던 제도는 보완이나 발전되기도 했다. 사회의 관심도 높아져서 회사 내에서 피해자 보호를 언급하는 일도 늘어났다. 어쨌든 내가 조금 힘들더라도 나아지고는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피해자가 많아졌다. 수면 밑에 있던 피해자들이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인지, 범죄에 해당하는 행위가 늘어나서인지, 피해자들이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시작하면서인지. 어쨌든 내가 만나야 하는 피해자들이 늘어났고 동시에 내가 만나지 못하는 피해자들도 늘어갔다.

만나는 피해자들은 모두 제각기였지만 비슷한 일이 많았다. 자책하고 두려워하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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