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롱이 ‘대통령의 두 신체’를 언급한 이유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인증된 계정 · 다른 시각을 권하는 불편한 매거진
2024/07/25
  • 에블린 피예에


<파리 무프타르 극장에 붙은 세익스피어 극 ‘햄릿’ 이미지>, 2011 - 오딜 샹보
1957년, 독일 출신의 역사학자인 에른스트 칸토로비치는 자신이 교직 생활을 하던 미국에서 놀라운 제목의 책을 한 권 출간했다. 바로 『The King’s Two Bodies(왕의 두 신체)』였다.(1) 칸토로비치 본인도 이 책의 콘셉트가 “매우 부조리하고, 많은 부분에서 거슬리고, 이를 웃음거리로 포장해보려는 시도”가 두드러진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이 책은 프랑스 정치인들과 수필가들 사이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며 다양한 분야에서 인용됐다.

위키피디아에서는 칸토로비치(1895~1963)를 “중세의 연구가, 레지스탕스 활동가, 대학교수”로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칸토로비치에 대한 평가는 다소 엇갈린다. 열렬한 민족주의자인 동시에 열성적인 반(反)공산주의자였던 칸토로비치는, 제1차대전이 끝날 무렵 폴란드의 독립운동을 진압하는 우익 민병대에 참가했으며, 베를린과 뮌헨에서는 진보적인 스파르타쿠스 의용단원들의 봉기에 맞서 싸웠다.

 

에른스트 칸토로비치가 주장했던 ‘왕의 두 신체’


칸토로비치는 세련된 멋쟁이였고, 쾌락주의자였으며, 비밀스러운 인물이었다. 그는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와 가까웠던 시인 슈테판 게오르게의 서클에도 소속되어 있었는데, 이 서클은 ‘비밀스러운 독일’, 즉 독일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날을 앞당기기 위해 다방면으로 활동하는 집단이었다. 1934년 칸토로비치가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했던 마지막 수업은 이 ‘비밀스러운 독일’에 관한 내용이었다.

당시에 그는 1931년에 출간된 프레데리크 2세의 전기로 이름이 꽤 알려진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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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르몽드의 대표적인 자매지로 약칭은 "르 디플로"입니다. 국제뉴스를 다루는 월간지로 30개 언어로 51개 국제판이 발행되고 있다. 조르조 아감벤, 아니 에르노, 알랭 바디우, 슬라보예 지젝, 피에르 부르디외 등 세계적 석학들이 즐겨 기고했으며, 국내에서는 한국어판이 2008년10월부터 발행되어 우리 사회에 비판적인 지적 담론의 장으로서 각광받고 있습니다. 노엄 촘스키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를 일컬어 "세계를 보는 창"이라고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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