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의 전반전
2024/08/09
낙차가 큰 글쓰기
기자가 되기 위해 글쓰기를 공부했습니다. '낙차가 큰 글'을 써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뽑히기 위해선 눈에 띄어야 하고, 눈에 띄기 위해선 '굴곡이 있는 글'을 써야 한다. 따라서 낙차가 큰 스토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게 핵심이었죠.
도대체 낙차가 큰 글이란 어떤 것일까 한동안 고민했습니다. <부부의 세계> 1화처럼 불륜을 곧바로 잡아내는 치정극을 써내야 하는지, <돌풍> 1화처럼 대통령을 죽이면서 시작해야 하는지 도통 모르겠더라고요.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했고요.
그래서 기자가 되지 못했습니다. 정확히는, 기자'는' 되지 못했습니다. 하하.. 또 모르죠. 기자'만' 되지 못했을지, 기자를 '하지 않'을지.
낙차가 큰 시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저어 오오.
학창 시절에 배운 시를 대부분 기억하지 못합니다. (정확히는) 기억해야 할 이유를 느끼지 못했달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작품은 머릿속에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김동명 작가의 <내 마음은>이라는 시입니다.
"은유법이란? 표현 속에 비유를 안 보이게 숨기는 거야. 대표적인 문장은 '내 마음은 호수요~'이고..." 선생님의 이 말씀이 아직도 귀에 선합니다. 그래서 이 문장을, 저절로, 통째로, 외워버렸죠. '그대 저어 오오'의 '오오'를 발음하기 위해 입을 계속 오므리면서요.
그런데 웬걸. 성인이 되어 <내 마음은> 시의 전문을 읽다 화들짝 놀랐습니다. 제가 생각한 결말이 아니었기 때문이죠.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노 저어 오오.
나는 그대의 흰 그림자를 안고 옥같이
그대의 뱃전에 부서지리라.
내 마음은 촛불이요,
그대 저 문을 닫아 주오.
나는 그대의 비단옷자락에 떨며, 고요히
최후의 한 방울도 남김없이 타오리다.
내 마음은 나그네요,
그대 피리를 불어 주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