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에서 광고를 봐야하나

이건해
이건해 · 작가, 일본어번역가. 돈과 일을 구함
2023/03/31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세로로 긴 모니터가 설치된지 대충 1년쯤 되지 않았나 싶다. 요즘 세상에 그렇게 별스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딱히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신경 끄고 넘겼는데, 연말에 예민해진 상태로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 모니터에 대해 ‘신경을 끄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정반대로, 의식하지 않겠다고 작정하고 마음먹지 않으면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멍하니 모니터에 표시되는 광고를 보는 지경이었다. 의식하지 않으면 어떤 행동을 아주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는 점에서 그건 거의 마인드컨트롤이나 다름없다고 해도 좋지 않을까?

그렇다면 원래는 엘리베이터에서 뭘 했을까, 가만히 생각해보자. 일단 엘리베이터에 탄다. 중요 공고문이 붙어있지만 이것들은 좀 이상하지 않나 싶을 정도로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버튼을 누른다. (맞다, 엘리베이터에 탄 사람은 곧장 뒤돌아서 버튼을 누르니까 문이 열리자마자 보이는 면에 공고가 붙어있어도 눈여겨 볼 수 없는 게 당연하다.) 그 뒤에 손소독제로 손을 닦고, 스마트폰으로 팟캐스트를 재생하고, 거울을 잠깐 보고, 다시 스마트폰을 보기도 하지만, 나는 데이터 제공량이 적은 요금제라 다시 정면을 보며 기다린다. 그러다 문이 열리면 나간다.

아마도 전 국민이 비슷할 이 과정에서 거울을 보는 대신 광고를 보게 되었으니, 엘리베이터가 만들어진 이후로 에너지 소모 없이 사람들을 지루하지 않게 만들어주던 유구한 전통이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나게 된 셈이다. 여간 아쉽지 않은데, 사람 시선이 거울이 아니라 모니터로 향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일 것이다. 특히 집을 나설 때라면 모를까 집에 들어올 때라면 내 꼬락서니를 다시 점검할 필요도 없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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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미스터리를 주로 쓰고 IT기기와 취미에 대한 수필을 정기적으로 올립니다. 하드보일드 미스터리 소설 “심야마장-레드 다이아몬드 살인사건”으로 데뷔. SF호러 단편소설 ‘자애의 빛’으로 제2회 신체강탈자문학 공모전 우수상. 제10회 브런치북 출판공모전 특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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