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연구비의 역사 (2) - 록펠러 등의 자본가가 과학연구를 지원한 이유?
2023/09/25
도금 시대와 록펠러
미국에서는 정부의 과학 연구비 지원이 본격화되기 훨씬 이전에 록펠러와 같은 자본가에 의해서 설립된 재단에 의한 과학 연구 지원이 먼저 시작되었고, 이러한 추세는 현대의 빌 게이츠의 ‘빌& 멜린다 게이츠 재단’ 이나 저커버그의 ‘챈 저커버그 이니셔티브’ 등과 같은 형태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이 과학 연구에 투자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흔히 이야기되는 ‘부의 사회적 환원’ 과 같은 ‘포장’ 을 넘어서 이들이 과학 연구에 투자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19세기 후반, 록펠러 등의 자본가가 어떤 상황에 있었는지 알 필요가 있다. 19세기 중반, 남북전쟁이 종결된 이후 미국에서는 산업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각종 산업계에서는 이를 지배하는 독점 사업자들이 속속 등장하였다. 석유산업계의 존 D 록펠러의 ‘스탠다드 오일’ (Standard Oil), 철강 산업계의 앤드루 카네기의 ‘카네기 스틸’ (Carnegie Steel Company), 철도의 코넬리어스 밴더빌트 등은 인수 합병을 통하여 해당 산업계를 독점하는 트러스트 (Trust) 를 구성하여 막대한 자본을 쌓아올렸다.
이렇게 이들이 막대한 부를 쌓아올리는 과정에서 독점 자본가의 폐해 또한 대단하여 대중들의 독점 자본가에 대한 반감 역시 높아졌다. 이것이 극단적으로 나타난 사건들로써 1892년 카네기의 피츠버그 홈스테드 제강소에서 벌어진 노사 분규가 충돌로 번졌고, 회사측에서 고용한 용병단과 노동자들의 무력 충돌로 사상자가 나온 ‘홈스테드 학살’, 1894년 풀먼 철도차량 회사 노동자의 임금삭감으로 촉발된 '풀먼 파업', 1914년 록펠러가 운영하는 러들로의 콜로라도 광산에서 일어난 노동분규에서 회사측의 경비원과 주방위군이 충돌하여 주민 21명이 사망한 ‘러들로 학살’ 등이 있다. 이러한 사건들이 속출하면서 대중들의 자본가에 대한 여론 역시 악화되었다. 이에 따라 아이다 타벨 (Ida M. Tarbell)등의 저널리스트에 의한 록펠러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