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in 고전] 자신의 노동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여성에 관한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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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31
[문학 속 한 장면] 샬럿 브론테 作, <제인 에어>

지난 글에서 ‘책 읽는 여성에 관한 소설’로서 <제인 에어>를 살폈다. 이번 글에서는 ‘자신의 노동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여성에 관한 소설’이란 관점에서 <제인 에어>를 살펴보려 한다. <제인 에어>는 보통 로맨스 소설로 읽히지만, 이는 남성 주인공 로체스터에 포커스를 둘 때 그렇게 읽히는 것일 뿐이다. 여성의 ‘책 읽기’와 ‘노동’이란 키워드로 보면 이 작품은 완전히 새롭게 읽힌다. 제인 에어의 책 읽기는 여성의 언어를, 노동은 태도를 만들어낸다는 측면에서 이 작품을 읽어보면 한층 흥미롭다.

내 옷은 내 돈으로 사 입겠다

인간의 생활과 인간의 노동이 가까이에 있었다. 나는 계속 싸워야 했다. 살기 위해 애쓰고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열심히 고된 일을 해야만 했다.


샬럿 브론테, <제인 에어>, 을유문화사, 477쪽

“그럼 왜 밥벌이를 못 하는 거요?”
“밥벌이는 해 왔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500쪽

<제인 에어>는 여성의 독립성을 추상적으로 주장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바탕에 ‘여성이 노동할 권리’에 대한 생각을 깔고 있다는 점에서 현실에 발을 단단히 붙이고 있는 작품이다. 일례로 제인은 어딜 가든 일거리(작품 속 표현으로는 ‘노역(servitude)’)를 달라고 기도하며, 일거리도 스스로 광고를 내어 찾는다. 이러한 제인의 모습에는 ‘나는 노동자다’, ‘내 생계는 내가 책임진다’라는 자기인식이 반영되어 있다. 여성 주인공이 사랑이나 사랑의 결실로서 결혼이 아니라, 자신의 노동 및 노동자적 정체성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 것이다. 이는 <제인 에어>의 전체적 전개와 톤을 매우 흥미진진하게 만들어준다.

특히 나는 ‘노동하는 사람이다’라는 제인의 자기인식은 로체스터와의 관계에서 주도권을 갖게 한다. 로체스터는 틈만 나면 제인을 ‘천사’나 ‘요정’이라 부르고, 청혼을 한 이후에는 원하는 건 보석이든 옷이든 다 사주겠다고 하는데 그에 대한 제인의 단호한 대답들은 이 작품을 읽는 쏠쏠한 재미 중 하나다. 가령 로체스터가 여러 벌의 비단 드레스를 사주려 하자 제인은 이를 거부하며 지금까지처럼 가정교사 연봉 30파운드만 제공해주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그 돈으로 내 옷을 사 입을게요.”(3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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