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 중간정산] 짜릿해, 늘 새로워, 돈이 최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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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mpman84 · 방송사에서 일하는 직장인
2024/05/20
 아침에 일어나서 샤워를 한다. 서둘러 준비를 마치고 출근해야 하므로 길어야 10분 남짓.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리는 물방울을 맞으며 혼자만의 생각에 잠긴다. 주로 '흑역사'에 대한 후회와 함께 그때 이랬으면 어땠을까, 하는 부질없는 공상이다. 나는 어느새 영화 <어바웃 타임>의 주인공처럼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돌아간다. 첫 번째 여자 친구와 헤어질 때 그렇게 유치한 짓을 하지 말 걸, 언젠가 아내의 생일날에 괜히 다투지 않게 케이크를 미리 사 둘 걸, 가고 싶던 그곳의 최종 면접 때 까먹지 말고 준비했던 말을 꼭 할 걸, 지난 부서의 어느 회식날 술을 덜 마실 걸. 흘러간 장면들을 떠올리고 지우려 하고 실제와는 다르게 재구성해 본다.

 요즘엔 주제가 바뀌었다. 이를테면 이런 생각들. 대학 신입생 때 네이버 주식을 샀어야 했다. 그 시절엔 다음과 엠파스와 라이코스와 야후와 파란과 네이버 등이 춘추전국시대처럼 다툼을 벌였는데 결국 패권을 차지한 쪽은 네이버였다. 신혼집이 자리했던 곳은 상수동이었다. 그때 빌라 전세가 아니라 "노 피어!"를 외치며 몇 억 원의 빚을 내서 밤섬 래미안 같은 아파트를 샀더라면 집값이 엄청 올랐을 게다. 속는 셈 치고 비트코인 초기에 몇백 만 원만 투자했더라면. 내가 알던 때로부터 천 배가 넘게 뛰었으니 계산해보면 얼마야 대체. 그 돈으로 마포나 강남에 아파트를 몇 채 사서 전세를 주거나 반전세를 줘서 월세를 받아먹고, 남는 건 재개발을 노리며 서울 어딘가의 빌라나 주택을 사고, 지금 타고 다니는 차는 외제차로 바꾸고, 강원도나 제주도의 콘도 회원권도 하나 살까. 아, 물론 회사는 때려치워야지. 일순 정신을 차려보면 여지없이 '부자 되는 꿈'에 젖어 입을 헤벌쭉거리는 중이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벌어진 입을 다물고서 샤워기를 끄고 머리를 흔들어서 물기를 털어냈다. 물방울과 함께 부질없는 생각 부스러기들도 함께 떨쳐냈다. 영화의 주인공처럼 나 역시 이제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그와 마찬가지로 아이를 낳아서 기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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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해야 좀 더 즐거울 수 있을까 고민하는, 열정 따위 없는 룸펜이고 싶습니다. 먹고 살아야 해서 어느 지상파 방송사에서 10여년째 일하고 있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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