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쇼핑 PD의 방송 파헤치기
홈쇼핑 PD의 입장에서 홈쇼핑 방송 60분은 한마디로 모든 것을 쏟아내는 전쟁터입니다. 실제로 방송이 끝난 직후 다리에 힘이 풀린 적도 있고 목이 다 쉰 적도 있습니다. 쉴 새 없이 몰아치며 시청자들을 유혹하는 홈쇼핑 방송은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어느 날 갑자기 무알콜 맥주를 론칭해야 한다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애주가 입장에서 이 무슨 무례한 상품인가 싶었지만 홈쇼핑 PD가 상품을 고른다거나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은 없기에 방송 준비에 착수했습니다.
홈쇼핑은 처음인 업체와 컨셉이 막막한 MD를 다독이며 1차 미팅을 진행했습니다. 저도 무알콜 맥주는 처음이라 일단 상품에 대한 정보를 묵묵히 들으며 대체 이 놈을 어떻게 팔아야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1차 회의가 끝난 후 우리의 결론은 하나였습니다
"망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살 리가 없고 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관심이 없을 텐데.. 대체 누구한테 팔지??
서로가 '허허 이것 참'만 반복하다 미팅은 끝났습니다.
그때부터 숙제는 온전히 PD의 몫입니다. 어떤 컨셉으로 팔 것인지, 스튜디오는 어떻게 꾸밀 건지, 어떤 호스트에게 어떤 멘트를 요청할 것인지, 시청자들에게 보이는 자막은 어떻게 쓸 것인지.
머리를 싸매고 공부한 끝에 술은 못 마시지만 술자리에서 어색하지 않게 어울리고 싶은 사람들, 그리고 술을 너무 마시고 싶은데 피치 못할 사정으로 술은 못 마시고 그나마 비슷한 맛이라도 즐기고 싶은 사람들이 종종 무알콜 맥주를 찾는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타깃을 정했으니 한 시간 방송을 어떻게 채워 넣을지 고민할 차례. 호스트가 추가된 2차 미팅 때 그런 상황에 있는 모습을 사전 촬영해서 방송에 활용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습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