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열심히 보지 않는 사진을 위하여

이건해
이건해 · 작가, 일본어번역가. 돈과 일을 구함
2023/04/10
요즘은 다들 카메라와 친하지 않게 되었다. 일기장 대신으로 블로그를 쓰는 사람도 적지 않고, 그들중에서 핸드폰 카메라에 만족하지 못해 적당한 컴팩트 카메라를 사는 사람도 제법 많던 시절이 있었던 과거에 비하면 요즘은 어지간히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닌 다음에야 누구도 카메라를 따로 갖추어 들고 다니지 않게 된 탓이다.

하기야 스마트폰에 1억 화소가 들어가고 있으니 굳이 무겁게 카메라를 쓸 이유가 없으리라. 심지어 갤럭시 S6쯤부터 스마트폰 카메라는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는 말까지 있는데, 아무리 그래도 ‘완성’이라는 건 너무 과장이 아닌가 싶어도 샘플 사진을 찾아보면 분명 일리가 있다. 스마트폰으로 찍고 스마트폰으로 보는 환경을 생각해보면 진짜 카메라로 찍은 것과 별반 차이도 없는 것이다. 확대해서 잘 뜯어보면 어디가 어떻게 차이나는지 짚어낼 수 있지만, 어지간해선 그런 짓은 하지 않는다. 요컨대 스마트폰의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카메라는 어쨌거나 집에 한 대는 있는 일상용품에서 취미인의 취미용품 혹은 전문가의 전문기기가 되었다는 소리다.

나는 지금도 취미용품으로서의 카메라를 보유하고 있다. 2013년 출시된 소니의 구형 중급기인 Nex-5t인데, 이 카메라를 사기까지의 과정도 참 기구한 업그레이드의 연속이었다.

일단 블로그를 열심히 하던 시절에 리코의 컴팩트 카메라를 사서 잘 쓰다가 아이폰을 쓰면서 처분한 뒤로는 줄곧 스마트폰 카메라로 만족하고 살았다. 그런데 어느날 아이폰 6s를 들고 계곡에 놀러가서 찍은 사진과 동영상들이 이상할 정도로 아쉽게 느껴졌다. 그건 사진 자체의 문제라기보단 나의 감정적 문제에 가까웠다. 인생에 몇 번 찾아오지 않는 행복한 순간인데 이런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나은 화질로 기록하지 않으면 그건 돌이킬 수 없는 손해가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게다가 애플이 이어폰 단자를 삭제하는 등 파격 행보를 시작한 데에 염증을 느끼기도 해서, 그때부터 라이카와 협업으로 만든 카메라를 탑재했다는 화웨이 P9을 썼다. 너무 어둡거나 채도가 높은 감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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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미스터리를 주로 쓰고 IT기기와 취미에 대한 수필을 정기적으로 올립니다. 하드보일드 미스터리 소설 “심야마장-레드 다이아몬드 살인사건”으로 데뷔. SF호러 단편소설 ‘자애의 빛’으로 제2회 신체강탈자문학 공모전 우수상. 제10회 브런치북 출판공모전 특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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