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에 나선 의사들에게 주는 조언
조선일보 스포츠부에 있던 나는 1990년 즈음 노조가 파업을 앞두고 있을 때, 일본에 출장이 예정돼 있었다. ‘조직에 대한 책임감’은 숭고한 것이므로 파업을 한다면 나도 그 대열에서 빠질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럴 경우에 부장이 겪게 될 곤란함이 걱정됐다. 그래서 부장에게 “제가 일본에 갔는데 노조가 파업을 하면 기사를 보내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내 딴에는 부장이 나중에 곤란한 상황에 처할 때 대처방안을 미리 강구해 놓으라는, ‘호의’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그러나 이는 바보같은 행동이었다. “나중에 올 파국에 대한 ‘부담’을 부장에게 떠넘기는” 행동이기도 했다. “파업에 동참할 것인가, 기자로서의 일을 해야 하는가”라는 실존적 고뇌는 오로지 나의 몫이어야 했다.
일본으로 떠나기 전날, 나는 노조 집행부 선배에게 “파업 하는 거냐”라고 물었다. 선배는 “우리가 곰바우냐. 일을 그렇게 파국으로 몰아가게”라고 했다. 나는 사내 정치의 판을 읽지 못한 나 자신이 한심했고, 선배들이 야속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일본에 다녀온 후, 나는 편집부로 발령났다. 내 말이 편집국 전체에 알려졌고, 나는 ‘요주의인물’로 찍혔으며 스포츠부장에게도 밉보인 것이었다. 편집부는 중요한 부서이지만, 당시 이 인사는 내게는 ‘귀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