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로 살았던 시간의 기억 2

박순우(박현안)
박순우(박현안) · 쓰는 사람
2022/12/11
"큰일 났어. 어떡해."
"왜 무슨 일인데?"
타사 여기자가 전화를 걸어왔다. 지방 의회에 출입하고 있는 기자였다.
"K선배가 지금 H선배 불러서 막 따지고 있어. H선배가 박기자에 대해서 뭐라고 떠들고 다녔다며?"
K선배는 목소리가 유달리 큰 사람이었다. 자기 주장이 강하고 거침 없는 사람. 나에게 한 마디 상의도 없이 벌인 일이었다. 앞이 캄캄해졌다. 대체 어쩌자고. 왜.
"거기 사람 많아?"
"많지. 여기 출입기자들 거의 다 있어. 의회직원들도 좀 있고. 복도가 쩌렁쩌렁 울려. 이게 뭔 일이야. 괜찮아?"

오래된 일이고, 기억은 여기저기 끊겨 있다. 명확하지 않지만 하나 분명한 건, 나는 끝내 K선배에게 그날 왜 그런 짓을 벌었느냐고 따져 묻지 못했다는 것이다. 결과야 어찌 됐든 표면적으로 K선배는 날 위해 그런 일을 벌인 것으로 비춰졌다. 나중에는 '내게 나쁜 감정이라도 품고 있었나' 의심이 들기도 했지만, 모두와 싸우는 건 내게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런 일이 처음이니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도 몰랐다. 내 감정을 속으로 처리하기도 힘든데 나는 무언가를 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그게 무엇인지는 몰랐다. 우선 화를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먼저였다. 내가 제일 먼저 화를 내야 하는 상대는 H선배였다.

마음을 진정시키기도 어려운데 동시에 앞날까지 생각해야 했다. 마침 남몰래 다른 방송사에 면접을 보고 결과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지방 신문사의 월급은 그야말로 박봉이었다. 차 기름값이나 휴대폰 비용이 지원되지도 않았고, 근무 시간도 길었다. 인원이 부족해 하루 많게는 대여섯 개의 기사를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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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 씁니다. 『아직도 글쓰기를 망설이는 당신에게』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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