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에서 가슴을 지나 발까지

박순우(박현안)
박순우(박현안) · 쓰는 사람
2022/11/23
  독서모임을 처음 한 건 대학교 신입생 때였다. 한 선배가 학과 공부에 도움이 될 거라며 나와 친구들을 꼬셨다. 등록금 투쟁에 진심인 선배였다. 뭔지도 모르면서 선배를 따라간 건 어딘지 대학생스러웠기 때문이었다. 당시 대학생은 논다는 이미지가 강했지만, 그럼에도 내 안 어딘가에는 대학생스러운 무언가를 갈망하고 있었다. 입시에 목을 매는 고등학교와는 다른, 술만 퍼마시며 시간을 탕진하는 게 아닌, 어떤 심오한 세계가 대학에는 있어야 한다고 막연히 믿어왔던 때문이었다. 그렇게 나는 모임에 들고 선배가 추천하는 책들을 읽었다. 

  유시민 작가의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을 시작으로 칼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 등을 읽은 게 이 때였다. 스무 살 성인이 됐다지만, 사회를 보는 눈도 없고, 비판적인 시선도 키우지 못한 내게 이런 책들은 너무 어렵기만 했다. 책을 읽는 내내 입안에서 글자들이 버석거렸고, 문장을 반복해 읽어도 도무지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가 머리를 잡아 뜯었다. 말이 독서모임이지 거의 선배가 하는 말을 듣는 것에 그치는 수동적인 모임이었다. 

  그 선배를 따라한 건 단지 독서모임만이 아니었다. 예비역 선배들과 모여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토론을 하기도 하고, 학우들을 상대로 찬성 서명을 받기도 했다. 광화문에서 장애인 이동권 투쟁에 참여하기도 했다. 선배가 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한다고 나서 선거운동을 한다며 밤낮으로 쫓아다니기도 했다. 학과 공부보다는 그런 것들에 매달린 2년이었다. 그 선배는 내가 그때까지 만나본 사람들 중에 가장 공부를 많이 하는 사람이었다. 각종 사회 문제들에 분노를 품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 당시 내게는 어떤 분노가 내재돼 있긴 했지만, 뚜렷한 의식은 없었다. 그저 다른 사람과는 어딘가 다른 그 선배가 멋져 보였다.

  그 선배와 함께 하는 걸 그만 둔 건 언론고시를 준비하면서부터였다. 마이크를 잡고 말하는 게 좋았던 꼬마가 자라 대학교 3학년이 되자, 이제는 슬슬 무언가 준비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사로 잡혔다. 그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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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 씁니다. 『아직도 글쓰기를 망설이는 당신에게』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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