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연구비의 역사 (4) - 냉전과 정부의 과학 지원의 팽창

남궁석
남궁석 · SLMS
2023/10/13
지난 회에 2차 세계대전이 정부의 과학 연구 지원을 본격화한 계기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버니바 부시 등이 2차 세계대전 종전이 가까워진 후 국가에 의한 과학 연구 지원을 지속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려고 한 이유 중의 하나가 전쟁이 끝난 이후 과학 연구의 지원이 전쟁 이전과 같은 상태로 되돌아가는 상황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곧바로 소련과의 냉전이 본격화되고 국방력 증대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부시 등이 염려했던 정부의 과학 연구지원 위축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국방과 관련된 기초연구 명목으로 물리학과 전자공학 등의 분야를 중심으로 대학 연구비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4년 후인 1949년 부시의 원래 소속 기관이었던 MIT의 전체 연구비 중 85퍼센트는 미국원자력위원회 (United States Atomic Energy Commission) 에서 지원되었고, 물리학 연구 관련 연구자금의 96퍼센트는 국방 관련 정부기관에서 지원된 것을 보면 냉전은 물리과학 분야의 연구비를 증가시키는 매우 중요한 계기로 활용되었다..

스푸트니크 쇼크

1957년에 소련이 미국에 앞서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를 지구 궤도에 쏘아올린 이후에 과학 연구 지원은 더욱 빠르게 증가했다. 미국이 소련과의 우주 경쟁에서 뒤지고 있으며, 이를 역전하기 위해서는 과학에 대한 투자를 해야 한다는 과학자들의 레토릭은 이후 10여 년 동안 연방의 과학 연구에 투자되는 예산이 (인공 위성이나 로켓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분야에까지) 몇 배 이상 증가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스푸트니크 발사 이후 불과 몇 달 만에 우주 개발의 컨트롤타워인 미국항공우주국 (National Aeronautics and Space Administration, NASA)이 설립되었으며, 국방부산하에서 군사 목적의 혁신적인 고급 연구 개발의 수행 지원을 담당하는 고등연구계획국 (Advanced Research Project Agency, AR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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