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없는 참사로 쓰러진 ‘111명’… 이 숫자를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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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30
“아빠, 오늘은 안 가면 안 돼?”

아들은 매일 하는 작별인사에도 좀처럼 적응하지 못했다. 그건 박성원(가명, 41세) 씨에게도 어려운 일이었다.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줄 아빠가 아이에게는 더욱 필요했을 텐데. 수호(가명, 7세)가 울음을 터뜨릴 때면 성원 씨도 코끝이 시렸다.

두 사람 모두에게 힘든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성원 씨는 저녁이면 아이 맡길 곳을 찾았다. 병상에는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모를 아내가 있었다. 성원 씨는 옷깃을 붙잡는 고사리 같은 손을 뒤로하고 아내가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잠깐의 시련을 극복하면 다시금 단란한 가정을 되찾을 수 있을 거라는 절실한 바람을 버리지 않았다.
가족들은 귀선 씨가 유방암 3기 진단을 받을 때만 해도 금방 일상으로 회복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박성원(가명) 제공
아내 여귀선 씨는 2017년 유방암 3기 진단을 받았다. 그때 귀선 씨의 나이는 서른다섯. 처음에는 단순히 운이 나빠 생긴 병일 거라고 짐작했다. 유방암은 예후도 좋다는 말에 치료에 전념하면 금방 일상으로 회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 그녀는 대구에서 서울까지 홀로 오가며 통원치료를 받는 것도 어렵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나 귀선 씨의 사촌오빠는 생각이 달랐다. 여 씨의 질병이 “삼성에서 근무하다가 생긴 병 아니냐”며, ‘반올림’이라는 단체를 소개했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은 2007년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고 황유미 씨 사건을 계기로 결성됐다. 지금까지도 전자산업 직업병 피해자들의 산재 인정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여귀선 씨는 고등학교도 졸업하기 전에 열여덟 살 나이로 삼성디스플레이 기흥공장에 입사한다. 그때가 2000년 12월. 한 달간 교육을 마친 뒤에는 천안사업장으로 이동한다. 이후 귀선 씨는 7년 2개월간 LCD 제조공정에서 근무했다. 이때 각종 화학물질과 방사선에 노출된 채 일했고,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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