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저의 가시
2024/04/15
* 본 글은 범죄 내용을 다루고 있으며, 사건의 대한 모든 내용은 실제 사건들을 기반으로 각색되었음을 알립니다. 또한 등장인물의 이름은 '뉴스젤리'의 "데이터로 보는 시대별 이름 트렌드, 요즘 핫한 이름은?"에서 무작위로 따온 것입니다.
피해자를 돕는 일을 하기 때문에 피해자들이 나를 덮어놓고 좋아할 거라는 생각을 많이들 한다. 나도 그럴 줄 알았다. 심지어 우리 회사 사람들도 피해자와 내가 대신 소통해 주길 바라기도 한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나 역시 피해와 회복 과정의 일부이며 그들의 피해를 상기시키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 다른 부서에서 연락이 왔다. 피해자가 와서 상담을 원하는데 어렵다는 것이었다. 아니 상담을 원하는데 어렵다는 건 뭐람. 노트와 펜을 챙겨 상담실로 향했다. 피해자를 보자마자 왜 어렵다는 것인지 바로 느낌이 왔다.
경계하는 눈빛, 잔뜩 예민해진 것 같은 태도. 전 연인에게 스토킹을 당하고 있다는 은정씨는 화가 난 사람처럼 보였다.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기 위해 명함을 전하고 가만히 앉아서 이야기를 들었다.
제가 이런 일을 당한 게 너무 창피하네요. 제가 그래도 업계에서는 이름이 없는 사람이 아닌데.
은정씨는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했다. 가끔 피해자들 중에서 유명인을 보곤 한다. 범죄피해에 지위고하가 어딨는가. 아이돌도 젠더폭력의 피해자가 되고, 정치인도 협박을 당한다. 피해자들 중 자신이 피해를 당한 것을 인정하지 못하거나,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을 보일 때가 있다. 범죄피해는 누구든 당하면 힘들다. 당연한 것인데 그게 참 어려운 사람들도 있다. 은정씨도 그런 사람이겠거니, 생각했다.
은정씨도 내내 공격적이었다.
뭘 해주실 수 있죠? 제가 죽으면요? 그게 다예요? 제가 어떤 일을 당했는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