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디 워홀, 팝아트 그리고 인스타그램

이요훈
이요훈 인증된 계정 · IT 칼럼니스트
2024/03/03
무엇을 말해야 할지 너무 명백해서 난감해질 때가 있다. 앤디 워홀은 양아치다. 그러나 그냥 양아치는 아닌 것이, 세계(라 쓰고 뉴욕이라 읽는다) 미술계의 흐름을 완전히 비틀어 놓았으니 양아치치고는 전국구다.

앤디 워홀은 베이비붐 세대의 미국이 낳은 사생아다. 그는 그 당시 미술이 처해있는 상황과 앞으로 미술이 무엇을 할 수 있는 지를 너무 잘 알았다. 그래서 다른 이들과는 정반대의 길을 택했다. 미술 작품을 생산하고 사업을 통해 돈을 벌고 연예인 같은 삶을 사는 길을.

앤디 워홀로 인해 미술은 그동안 스스로 부정하고 있었던 자기 정체성,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자기 정체성을 인정하게 된다. 현대 사회에서는 미술 작품도 하나의 상품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이제 예술은 몰가치하지 않다. 오히려 부를 축적하고 계급적 구별 짓기를 위한 귀한 자산이다.

그렇지만 봐야 할 것은 앤디 워홀이라는 작가가 아니라 그가 만든 작품이고, 그가 작품을 만드는 방식이다. 물론 그의 삶도 마찬가지다. 그는 자신의 작품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도 상품으로 만든, 스스로 만들어낸 하나의 가상 속에서 살았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https://www.independent.co.uk/arts-entertainment/art/features/andy-warhol-pop-art-30-year-anniversar

앤디 워홀을 잉태한 세계 - 뉴욕화파와 네오 다다

앤디 워홀은 그냥 태어나지 않았다. 다른 많은 예술가들과 마찬가지로, 앤디 워홀의 뒤에는 2차 세계대전과 파시즘이 있었다. 2차 세계대전 중의 뉴욕은 파시즘의 박해를 피해 이주한 사람들로 가득 찬 이민자들의 도시였다. 예술가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입체파의 대표적 화가 중 한 사람인 페르낭 레제(그리고 그로 인해 피카소), 추상 화가 피에트 몬드리안, 초현실주의 화가 막스 에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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