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저 빗물처럼 속절없이 흘러가는 것 같지만 사실은 켜켜이 쌓여간다. 기억 속에 겹겹이 박힌 채 농익어가는 것이다.
그는 때로 짙은 와인 한 잔의 풍미로 태어나고, 맥주 한 캔과 곁들일 안주거리, 가끔은 내 우울감의 원천으로 자리매김해 빛을 발한다.
좋았던 기억은 추억이 되고, 지우고 싶은 순간은 몹쓸 과거가 된다. 현재의 행복은 추억의 더미들로 얽혀져 있고, 작금의 불행은 어느 한 시점에 얽매여 있다.
우리는 모두 시간을 보내고 지내고 허비하며 살고 있다고 하지만, 그 발자취는 발 아래 차곡차곡 포개어져 있다. 하나둘씩 늘어가는 주름이, 소중한 액자 속 사진들이, 틈틈이 회상하는 기억들이 그 방증이다.
불과 10분 전 나는, 현재의 나에게 이제 막 무르익기 시작한 과거 한 조각을 넘겼다.
@haewol.a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