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학생이 화가 났다. 코로나 때문에 학원도 닫고 학교도 닫고 식당도 닫잖아요. 근데 목욕탕은 왜 열어요? 거기선 마스크도 안 끼잖아요. 너무 무책임한 거 아니에요?
마땅한 질문이지만 쉽게 대답해주고 싶지 않았다. 실은 저 질문을 주저 없이 할 수 있는 순진함에 살짝 짜증도 났다. 그 질문이야말로 너의 계급성을 드러낸다는 것을 넌 모르겠지, 이 부르주아야?
어차피 알아듣지 못할 말을 속으로나 되뇌며 나는 떠올렸다. 목욕탕이 꼭 열려야만 하는 이유를, 또 대중목욕탕이 아니면 몸을 씻을 수 없는 사람들을, 혹은 어릴 적의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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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했다. 그런데 '가난'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으면 조금 민망해지는 것이, 객관적 기준으로서의 빈곤과 주관적 인식으로서의 가난한 삶이란 분명 온도 차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굶진 않았다. 내 부모가 겪은 빈곤과 내것은 분명 달랐다. 비교 대상이 없는 한, 내게 가난이란 불편 정도였지 생활의 불능 같은 건 아니었다.
그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