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은 냄새를 풍긴다

이재랑
이재랑 · 살다보니 어쩌다 대변인
2021/11/11

 한 학생이 화가 났다. 코로나 때문에 학원도 닫고 학교도 닫고 식당도 닫잖아요. 근데 목욕탕은 왜 열어요? 거기선 마스크도 안 끼잖아요. 너무 무책임한 거 아니에요?

 마땅한 질문이지만 쉽게 대답해주고 싶지 않았다. 실은 저 질문을 주저 없이 할 수 있는 순진함에 살짝 짜증도 났다. 그 질문이야말로 너의 계급성을 드러낸다는 것을 넌 모르겠지, 이 부르주아야? 

 어차피 알아듣지 못할 말을 속으로나 되뇌며 나는 떠올렸다. 목욕탕이 꼭 열려야만 하는 이유를, 또 대중목욕탕이 아니면 몸을 씻을 수 없는 사람들을, 혹은 어릴 적의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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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난했다. 그런데 '가난'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으면 조금 민망해지는 것이, 객관적 기준으로서의 빈곤과 주관적 인식으로서의 가난한 삶이란 분명 온도 차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굶진 않았다. 내 부모가 겪은 빈곤과 내것은 분명 달랐다. 비교 대상이 없는 한, 내게 가난이란 불편 정도였지 생활의 불능 같은 건 아니었다.

 그러나 불현듯 만나게 되는 가난은 마음을 짓눌렀다. 그 중 아직도 가슴에 서늘하게 남아 있는 충격은 '사람들은 매일 샤워를 하고 산다'라는 것을 서울살이를 시작한 스무 살이 돼서야 알았다는 것이다.

​ 겨울이면 보일러에 기름 넣을 돈이 없어 자주 물을 끓여 썼는데, 집의 화장실이란 알몸으로는 버틸 수 없을 만큼 너무 추웠을뿐더러 그런 몸을 데울 뜨뜻한 물이 매번 공급되지도 않는다는 게 십 대까지 나에겐 너무나 당연한 세계였다. 그러니 당연히 온몸을 닦는다는 건 일주일에 한 번 대중목욕탕에서나 가능한 건데 서울 오니까 가난하다는 청년들도 매일 샤워를 하고 사는 것이었다. 충격이었다. 가난이 나를 더럽게 만들었다는 생각에.

​ 그때 만약 목욕탕이 없었다면. 나는 가난이 선사하는 냄새를 곳곳에 뿌리고 다녔을지 모른다. 생각만으로도 아찔하고 서럽다. 가난이 주는 쭈글함이 있다. 초등학교 때 친한 친구가 우리 집을 보고는 들어오기를 멈칫거렸을 때부터, 나는 그 감각을 이미 체화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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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정의당/청년정의당 대변인 (~2022) 10년 차 사교육 자영업자. 작가가 되고 싶었고, 읽고 쓰며 돈을 벌고 싶었고, 그리하여 결국 사교육업자가 되고 말았다. 주로 학생들의 한국어 능력과 시험성적을 꾸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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