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학생이 화가 났다. 코로나 때문에 학원도 닫고 학교도 닫고 식당도 닫잖아요. 근데 목욕탕은 왜 열어요? 거기선 마스크도 안 끼잖아요. 너무 무책임한 거 아니에요?
마땅한 질문이지만 쉽게 대답해주고 싶지 않았다. 실은 저 질문을 주저 없이 할 수 있는 순진함에 살짝 짜증도 났다. 그 질문이야말로 너의 계급성을 드러낸다는 것을 넌 모르겠지, 이 부르주아야?
어차피 알아듣지 못할 말을 속으로나 되뇌며 나는 떠올렸다. 목욕탕이 꼭 열려야만 하는 이유를, 또 대중목욕탕이 아니면 몸을 씻을 수 없는 사람들을, 혹은 어릴 적의 나를.
----
가난했다. 그런데 '가난'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으면 조금 민망해지는 것이, 객관적 기준으로서의 빈곤과 주관적 인식으로서의 가난한 삶이란 분명 온도 차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굶진 않았다. 내 부모가 겪은 빈곤과 내것은 분명 달랐다. 비교 대상이 없는 한, 내게 가난이란 불편 정도였지 생활의 불능 같은 건 아니었다.
그러나 불현듯 만나게 되는 가난은 마음을 짓눌렀다. 그 중 아직도 가슴에 서늘하게 남아 있는 충격은 '사람들은 매일 샤워를 하고 산다'라는 것을 서울살이를 시작한 스무 살이 돼서야 알았다는 것이다.
겨울이면 보일러에 기름 넣을 돈이 없어 자주 물을 끓여 썼는데, 집의 화장실이란 알몸으로는 버틸 수 없을 만큼 너무 추웠을뿐더러 그런 몸을 데울 뜨뜻한 물이 매번 공급되지도 않는다는 게 십 대까지 나에겐 너무나 당연한 세계였다. 그러니 당연히 온몸을 닦는다는 건 일주일에 한 번 대중목욕탕에서나 가능한 건데 서울 오니까 가난하다는 청년들도 매일 샤워를 하고 사는 것이었다. 충격이었다. 가난이 나를 더럽게 만들었다는 생각에.
그때 만약 목욕탕이 없었다면. 나는 가난이 선사하는 냄새를 곳곳에 뿌리고 다녔을지 모른다. 생각만으로도 아찔하고 서럽다. 가난이 주는 쭈글함이 있다. 초등학교 때 친한 친구가 우리 집을 보고는 들어오기를 멈칫거렸을 때부터, 나는 그 감각을 이미 체화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모든 ...